[더팩트ㅣ이한림 기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촉발된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 한국 증시가 유독 가혹한 매를 맞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일본 닛케이와 중국 상하이 등 아시아 주요 지수는 중동 리스크를 비교적 차분하게 대응하며 낙폭을 최소화하고 있으나, 코스피는 이틀 연속 급락하면서 공포 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7.24% 내린 5791.91에 장을 마감했다. 장중 한때 8% 가까이 밀리며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으나 외인의 5조원대 이탈을 막지 못한 결과다.
다음 날인 5일 장에서도 장 초반 유사한 흐름이 지속되며 오전 한때 5500선까지 위협받는 등 이틀 연속 사이트카가 발동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반면 인근 아시아 증시는 상대적으로 평온했다. 일본 닛케이225 지수는 4일 장 초반 급락세를 보이다가 저가 매수세가 몰려 1.35% 하락으로 마감했고,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같은 날 오히려 0.47% 상승 마감으로 거래를 마쳤다. 대만 가권지수 또한 2%대 하락에 그쳐 코스피보다 견조한 복원력을 보였다.
아시아 증시 내에서 희비가 엇갈린 배경으로는 각국의 경제 구조와 통화 특성 차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본은 엔화가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덕에 지정학적 위기 시 엔화 가치가 상승하며 증시 하단을 지지하는 완충 작용을 했다. 글로벌 공급망 우려에서도 상사주나 내수 우량주가 실적 방어력을 입증하며 외인의 급격한 이탈을 막아냈다는 평가다.
중국의 경우 강력한 내수 부양책과 중동 분쟁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공급망 구조가 부각되면서 보합세를 나타냈다. 에너지 수입선이 다변화됐고 정부 주도의 증시 부양 의지 또한 확고한 점이 투자 심리를 안정시킨 결과다.
한국은 높은 대외 의존도가 과한 증시 낙폭으로 이어졌다. 에너지 지급률이 낮은 한국 경제 특성상 중동 분쟁으로 인한 유가 급등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 등은 생산 비용 상승이나 수출 경쟁력 악화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화 가치 약세까지 겹치자, 글로벌 펀드들이 유동성이 좋고 경기에 민감한 한국 주식을 최우선 현금화 표적으로 삼은 셈이다.
특히 지난달 26일 코스피 6300선 돌파의 일등공신이던 반도체 대형주들이 외인의 매물 폭탄을 고스란히 받아낸 점이 뼈아팠다. 외인은 4일에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을 중심으로 5조원이 넘는 매물을 쏟아냈다.
이에 시장 관심은 현재 급락 중인 코스피의 바닥이 어디인지에 쏠린다. 증권가에서는 기술적 분석상 다음 지지선은 5000선 내외로 점치고 있으나, 중동 사태가 전면전으로 확산할 경우 지지선 논의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가 올해 다른 지역보다 유독 많이 오르기는 했지만, 그래도 코스피 급락에 대한 타격감은 상당하다"면서 "주가가 많이 올랐던 업종부터 우선 매도하는 무차별한 하락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결국 시장이 보는 종결 신호는 휴전 선언보다 보험·운임·통항 정상화와 액화천연가스(LNG)·정유 공급의 복구 속도"라며 "투자 판단은 이 전이 경로가 추가 악화로 이어지는지 안정으로 전환되는지로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