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이종필 감독은 청춘을 향한 시선으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각색해 영화 '파반느'를 완성했다. 기본적인 틀은 따르되 자본주의와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원작과는 궤를 달리한다. 사랑을 믿고 싶었지만 끝내 확신하지 못했던 마음, 빛을 갈망하면서도 어둠에 머물렀던 순간들 등을 조명하며 재해석해 오늘의 청춘에게 말을 건넸다.
이종필 감독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 공개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연출과 각색을 맡은 그는 촬영 과정부터 작품을 대하는 태도까지 솔직한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 20일 공개된 '파반느'는 박민규 작가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원작으로 한 영화로,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던 세 사람이 서로에게 빛이 돼주며 삶과 사랑을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다. 공개 직후 관객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공감을 전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이종필 감독은 "겨울 장면이나 오로라를 보는 장면이 필요해서 텀을 오래 잡고 직었던 영화"라며 "본 촬영을 지난 2024년 5~6월에 80% 마친 뒤 장마가 끝나고 인디언 장면을 찍었다. 그리고 겨울이 돼 또 촬영했고 소규모로 아이슬란드도 갔다. 눈 오는 것도 기다려야 해서 해를 넘겨 버스 장면도 찍었다"고 돌이켰다.
그렇게 2025년 4월이 돼서야 첫 편집을 마칠 수 있었다. 사실 당초 극장 개봉을 목표로 했던 작품이기도 했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먼저 연락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파반느'다. 이 감독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고아성 배우에게 얼핏 듣기로 글로벌 시청자들이 '미정 같은 삶을 살던 자신들에게 위로를 줘 감사하다'면서 편지도 보냈다고 하더라. 만족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만 공식 시사회나 블라인드 시사를 통해 관객의 직접적인 피드백을 듣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관객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피드백을 받아 고민하는 시간이 내겐 중요한 편인데 이번 작품은 그럴 수 없어 아쉬웠다. 그렇기에 인터뷰를 더욱 기다렸다"고 전했다.
이종필 감독이 작품을 통해 가장 강조한 키워드는 '빛과 어둠'과 '불균질'이다. 때문에 그는 작품의 시간적 배경을 특정 시대에 국한하지 않는 등 여러 요소들을 불균하게 뒤섞으며 시각적으로는 다소 생뚱맞은 부분도 과감하게 선택했다. 대신 인물들의 감정선에 초점을 맞췄다.
"원작 소설이 1985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영화는 '현재'로부터 5년 전이라고만 얘기해요. 굳이 시대를 명시하지 않고 인물의 청춘을 바라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레트로'적 요소와 현대적 감성이 뒤섞인 불균질한 미감을 의도했어요."
작품의 주요 배경이 되는 호프집 '켄터키 호프'는 콘셉트가 명확했다. 소외된 인물들이 모이는 장소인 것. 이 감독은 "실제로 잠깐 나오지만 초상화 사진이 여러 장 등장하는데 모두 역사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이 장소가 안식처 같은 느낌이길 바랐다"며 "호프집의 분위기 역시 레트로가 섞여 있다. 201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영역과 감정이 혼재된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켄터키 호프의 공간이나 분위기 역시 혼합적인 느낌이 있기를 바랐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이 이번 작품을 각색하면서 고민했던 지점 중 하나는 미정(고아성 분)의 '못생긴 여자'라는 설정이었다. 그는 "원작의 설정을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하는데 문득 자괴감이 밀려왔다. 스스로도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러다 다시 원작을 읽어보니 1985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화두를 제시하기 위해 '못생김'이라는 설정을 잡은 게 아닌가 싶더라. 때문에 이는 소설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조금 더 담고 싶은 건 20대 청춘들의 이야기인 만큼 다른 본질을 찾으려고 했다"고 털어놨다.
"고아성 배우가 이 작품을 하고 싶다고 할 때 '전 이 인물의 눈을 표현할 수 있다'고 어필했어요. 그 말이 다음날까지도 맴돌더라고요. 그리고 다시 소설을 보니 제가 꿈꾸는 영화의 핵심은 '사랑할 자신이 없는 마음'이 아닐까 싶었어요. 짝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안 될 것이라고 포기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괜히 부족해 보이고 자신감이 없는 마음은 누군가나 지니고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애초부터 시나리오에 '못생겼다'는 표현을 넣지 않았죠."
'파반느'는 '빛의 영화'다. 지하 공간, 센서 등, 엘리베이터를 통해 옮겨지는 빛의 순간마다 인물의 내면이 시각화된다. 이 감독은 어둠을 표현하는 건 오히려 쉽다며 대신 빛을 표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미정의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서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 감독은 "미정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가는 인물이다. 좁은 엘리베이터 문틈과 같은 순간에 비치는 빛이 그 여정의 상징이 되기를 바랐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촬영 과정에서 조명감독과의 작업이 결정적이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가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에요. 심지어 오로라까지 등장시키며 맑은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는 빛을 시각적 상징으로 활용했어요. 저희 조명 감독이 대단한 사람이에요. 작은 빛이라도 모든 장면 곳곳에 숨겨뒀죠. 저도 편집하면서 알게 된 부분도 많습니다."
고아성 외에도 함께한 배우들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먼저 변요한이 연기한 요한을 언급하며 "규정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원작에서도 드러나는 인물의 매력이다. 이 감독은 "요한은 차갑다가 뜨겁고, 농담처럼 시작해 진심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런 자유로운 영혼의 결을 변요한이 잘 보여줬다"고 말했다.
경록(문상민 분)의 부모님 서사에 대해서는 "제한된 정보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존재로 남기고 싶었다. 아무 정보도 없이 보면 경록의 부모도 그저 남자와 여자다. 허름한 곳에서도 사랑은 이뤄진다는 걸, 그들을 그냥 남녀의 멜로로 봐줬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경록의 죽음을 두고도 많은 고민을 거쳤다. 이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면서 마지막까지 '정말 죽여야 할까'라는 생각이 많았다. 정말 사랑했고 소중했던 사람을 잃는 경험을 해본 사람들도 있지 않나. 대신 경록을 죽일 수밖에 없다면, 가장 환한 빛을 경록에게 주고 싶었다. 그것이 맞은편 차량의 헤드라이트일지언정 환한 빛이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길 바랐고 그 순간 가장 행복한 기억을 간직하길 바랐다. 문상민 배우가 눈부심 없이 잘 연기해줘 고마웠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작품에서도 인터뷰에서도 '청춘의 사랑'을 강조했다. 이에 인터뷰 말미 이 감독에게 그가 생각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 감독은 "예술이 무엇이냐는 질문만큼이나 어렵다"며 웃었다.
"사랑을 규정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단어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어서 사랑이라 부를 뿐, 사실 그 안에는 설렘과 혼란, 상처와 그리움이 뒤섞여 있죠. 극 중에서도 왜 사랑을 했냐는 질문에 '물에 빠진 사람한테 왜 빠지냐고 물어보는 것과 똑같다'고 대답해요. 절 관통한 문장은 '그해 여름,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다. 처음엔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때로는 혼란스러웠으며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사랑했었다'는 표현입니다."
sstar1204@tf.co.kr
[연예부 | ssent@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