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설상미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법원이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의결을 방해하기 병력 투입을 지시하고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뒤에도 2차 계엄을 언급한 사실을 인정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이 1심 재판 내내 적극적으로 부인해왔던 혐의였다.
다만 윤 전 대통령이 2023년부터 장기집권을 위해 계엄을 모의했다는 증거로 제시된 이른바 '노상원 수첩'의 증거능력은 배척한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더팩트>가 확인한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윤 전 대통령이 2024년 12월 4일 밤 12시 32분부터 36분 사이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에게 전화해 "본회의장으로 들어가서 4명이서 1명씩 들쳐 업고 나오라"며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어 오전 1시 6분에는 "문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고 말했고, 그로부터 7분 뒤에는 "190명이 들어와 의결을 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190명이 있는지도 확인이 안 되니 계속하라"는 취지로 지시한 것으로 판단했다. 또 윤 전 대통령이 "내가 선포하기 전에 병력을 미리 움직여야 한다고 했는데 다들 반대해 일이 뜻대로 안 풀렸다", "결의안이 통과됐다고 하더라도 두 번, 세 번 계엄하면 되니 계속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것으로 적시됐다.
재판부는 이러한 지시가 단순한 질서 유지 차원이 아니라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의결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결론냈다. 재판부는 "질서유지가 아니라 국회 내부로 진입해 이 사건 포고령의 내용(정치활동 금지 등)에 따라 국회를 봉쇄하고 의결 등 국회의원과 국회의 활동을 방해하거나 저지하기 위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러한 판단을 근거로 형법상 내란죄의 성립 요건인 '국헌문란 목적'과 '폭동'이 충족된다고 봤다.
◆"윤석열, 장황하고 과장되게 표현하는 경향 있어"
윤 전 대통령은 병력 투입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오히려 윤 전 대통령의 화법 특성을 근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말할 때 특징, 화법, 톤, 내용 등 여러 가지를 살펴보면 어떤 말을 할 때 짧고 간단하게 하기보다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을 섞어가면서 말하고, 다소 장황하고 과장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이어 "당시 계엄해제 요구 의결이 이뤄진 상황에서 나름의 아쉬움과 답답함 등 여러 감정이 겹친 상태에서 이 전 사령관과 통화하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이런저런 여러 가지 말을 다소 과장되게 표현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라며 "위와 같은 표현의 말을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을 개연성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노상원 수첩' 증거 배척…"수사기관이 쉽게 발견할 곳에 있었다"
다만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이 2023년부터 장기간 비상계엄을 준비해 왔다는 특검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검이 핵심 근거로 제시한 이른바 '노상원 수첩'의 작성 시점을 특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다.
앞서 특검은 수첩에 '여인형', '박안수' 등이 기재돼 있었고, 2023년 10월 인사에서 여인형은 국군방첩사령관으로, 박안수는 육군참모총장으로 각각 보직된 점 등을 들어 최소 해당 시점부터 계엄이 모의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수첩 작성 시점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고, 수첩이 2024년 12월 15일 충남 서천군에 있는 노상원의 모친 주거지 책상 위에서 발견돼 압수된 점 등을 들어 장기간 사전 모의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노상원이 비상계엄을 2023년 10월경 이전부터 계획하고 그러한 계획을 김 전 장관에게, 그리고 김 전 장관을 통해 윤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면, 위 수첩은 비상계엄 선포 1년 전부터 이를 준비하고 계획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라며 "이를 수사기관에 발견하기 쉬운 모친 주거지 책상 위에 그대로 두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2023년 11월 6일 인사에서 여인형이 국군방첩사령관으로 보직될 당시 곽종근, 이진우 역시 각각 육군특수전사령관, 수도방위사령관으로 보직됐음에도 수첩에 이들에 대한 기재가 없는 점에 대해 특검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듬해 11월 무렵부터는 비상계엄 실행이 구체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같은 달 9일 국방부장관 공관 모임에서 비상사태를 전제로 각 부대의 대비태세를 확인한 정황이 인정된다고 봤다. 나아가 30일에는 국방부장관 공관 및 대통령 관저 보고와 관련해서도 김 전 장관이 계엄 실행 결정을 알리고 관련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비상계엄 이틀 전인 2024년 12월 1일부터 윤 전 대통령의 결심이 외부로 표출됐다고 봤다.
재판부는 "윤석열은 국회가 정부의 주요 관료들을 탄핵하고 예산을 삭감하는 등의 조치를 쉽게 하는데 반해 대통령이나 정부는 이에 대항해 할 수 있는 마땅한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국회가 정부로 하여금 제 기능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고 생각했다"라며 "점차 국회가 반국가세력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깊어져 국회의 활동을 무력화시키기로 마음먹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