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류승완 감독과의 작업부터 삶의 의지가 강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기회까지, 그 무엇 하나 끌리지 않은 지점이 없었다. 그렇게 '휴민트'가 된 배우 신세경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색다른 얼굴과 분위기로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관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신세경은 영화 '휴민트'(감독 류승완) 개봉을 앞둔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타짜-신의 손'(2014) 이후 12년 만에 관객들을 찾게 된 그는 "설레고 기대된다. 이제 시작이니까 더 많은 분께 저희 작품을 알릴 수 있도록 열심히 홍보 활동을 할 생각"이라고 남다른 각오를 다지며 작품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꺼냈다.
11일 스크린에 걸린 '휴민트'는 비밀도 진실도 차가운 얼음 바다에 수장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격돌하는 이야기를 그린 첩보 액션 영화로, '베를린'(2013)과 '모가디슈'(2021)에 이은 류승완 감독의 해외 로케이션 3부작이다.
먼저 신세경에게 오랜만에 큰 스크린으로 자신의 연기를 본 소감을 물었다. 그는 "걱정 반 설렘 반이었는데 너무 재밌었다. 인물들의 관계성부터 액션신까지 다 근사했다. 흥미로우면서도 여운을 갖고 나왔다"면서도 "제 연기를 객관적으로 보는 건 어려워서 다른 분들이 어떻게 보실까 궁금했는데 다행히 재밌게 보셨다는 반응이 많아서 기분이 좋았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이날 신세경은 '휴민트'를 선택한 첫 번째 이유로 류승완 감독과의 작업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난 그를 남다른 존경심과 두터운 신뢰를 드러내면서 "현장에서 솔선수범하시는데 이게 배우들이 감독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따라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회상했다.
"워낙 베테랑이라서 손과 발의 방향까지 디테일하게 지도해주셨어요. 저는 감독님이 원하시는 걸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는 느낌이었고요. 액션 연기는 의지만으로 해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엄청난 사이즈의 장면들을 찍어내는 데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다 감독님의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걸 보면서 존경스럽고 멋졌어요."
그렇게 블라디보스토크에 위치한 북한 식당의 종업원이자 정보원을 제안하는 조 과장(조인성 분)을 비롯해 박건(박정민 분), 황치성(박해준 분)과 얽히고설켜 있는 채선화가 된 신세경이다. 이 캐릭터는 그가 작품에 끌린 또 다른 지점이기도 하다.
"제가 해왔던 수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삶의 의지가 강한 인물이라고 느껴졌어요. 드라마틱한 서사 안에서 심플하게 표현돼서 그렇지 텍스트로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보통의 결단력으로는 선택하기는 어려운 길을 걸어온 인물이거든요. 책임지고 싶은 걸 지키기 위해서 아주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는, 생존을 향한 열망이 가장 강한 친구라서 끌렸어요."
그의 말처럼 채선화는 순탄치 않은 시간을 보낸 인물이다. 아픈 어머니의 치료 비용을 구하려던 아버지가 사건에 휘말리면서 약혼자 박건과의 관계도 돌이킬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를 연기한 신세경은 처음으로 도전한 북한말을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안정적인 가창력을 뽐내는가 하면,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강인한 눈빛을 잃지 않으며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얼굴을 꺼낸다.
"모든 작품이 저에게는 큰 도전이고 원래도 겁이 많은 편이라서 도전에 부담을 느끼는데 사투리 연기도 처음이라서 더 조심스러웠어요. 하지만 달리 지름길이 없어서 북한말 선생님께 열심히 배웠고 녹음파일을 따라 하면서 계속 연습했어요. 또래의 평양 여성에 포커스를 맞춰서 지도해주셨고요. 노래는 박건과 사랑하던 시절에 제가 선물로 줬던 곡인 만큼 사투리가 너무 도드라지지 않으면서도 북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내기 위해 신경 썼어요. 한 곡만 열심히 팠던 기억이 있어요(웃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채선화는 생존을 향한 갈망을 바탕에 깐 채 늘 주변을 경계하는가 하면, 전 약혼자 박건과의 우연한 재회에도 크게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는다. 이렇게 미세하게 변하는 표정과 톤만으로 인물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표현한 신세경이 유일하게 모든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이 마지막에 등장해 더욱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이와 관련해 그는 "박건과 우연히 재회했을 때 선화의 감정은 너무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으니까 근처에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제 일이니까 혼자 감당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박건이 총에 맞고 난 후 제대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힘듦을 쉽게 표현하는 성격이 아닌 친구라서 늘 절제된 느낌을 유지하려고 했다"고 연기 중점을 둔 부분을 밝혔다.
이번 작품의 관전 포인트는 보는 사람까지 다 아픈 류승완 표 액션 맛집과 차갑고 이국적인 블라디보스토크의 분위기 그리고 신세경과 박정민의 멜로다. 두 사람은 스킨십 하나 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만으로 절절한 관계성을 표현하며 강렬한 첩보액션물에서 애틋함과 짙은 여운을 선사한다.
"박정민은 다른 선배님들에 비해 저와 나이 차이가 많이 안 나는데 현장에서 연기하는 걸 보면서 저런 부분을 따라 하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 있으면 항상 물어봤고요. 정서적으로 위로받았고 감정적으로 의지를 많이 했어요."
모든 캐릭터와 얽히고설킨 채선화를 연기한 만큼, 조인성 박해준과의 호흡도 궁금했다. 신세경은 "조인성 선배님은 좋은 리더다. 해외에서 장시간 머물면서 촬영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 그런데 지치고 힘들어하는 동료 후배들이 없도록 케어해주셨다. 선배님이 소화해야 되는 촬영 분량이 많아서 쉽지 않으셨을 텐데 이걸 다 해내서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박해준 선배님의 연기를 보면서 전에 보지 못한 독특한 빌런의 탄생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 무드가 영화에 잘 묻어나와서 즐거웠고요. 선배님은 정말 재밌으세요. 함께 있으면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웃게 되는 에너지를 지닌 분이에요."
1998년 서태지의 'Take 5(테이크 5)' 포스터 모델로 데뷔한 신세경은 어린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과 만났고, 영화 '어린 신부'에 출연해 본격적인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드라마 '지붕뚫고 하이킥' '뿌리깊은 나무' '패션왕' '냄새를 보는 소녀' '육룡이 나르샤' '하백의 신부 2017' '신입사관 구해령' '런 온' '아라문의 검' '세작, 매혹된 자들' 등 꾸준한 작품활동을 통해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했다.
일찍 일을 시작한 만큼 나이에 비해 풍부한 경험을 쌓은 신세경이지만, 작품의 수가 많다는 느낌은 없었다. 이에 그는 "일 년에 한 편은 꼬박꼬박 찍고 있는 것 같은데 공개 시기를 제가 어떻게 조절할 수는 없으니까 텀이 더 길다고 느끼실 수 있을 것 같다. 팬들도 열심히 일하길 바라서 기회가 되면 아주 바쁘게 살아보려고 한다"며 "꽤 긴 시간을 성실하고 감사하게 해내고 있는 것 같고 앞으로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주어진 걸 열심히 하는 그런 온도로 일할 것 같다"고 앞으로의 행보도 전했다.
이렇게 신작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부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배우로서의 시간도 되돌아본 신세경이다. 그는 자신의 첫 도전이 가득한 '휴민트'라는 작품의 의미를 되새기며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
"큰 도전이었는데 함께 일하는 사람들 덕분에 용기 냈고 잘 끝낼 수 있었어요. 저에게 '휴민트'는 되게 좋은 기억으로 오래오래 남을 것 같아요.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영화인데 관객으로서 영화의 후반부에 짙게 깔리는 정서가 되게 오래 남아서 여운이 심한데요. 많은 분이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