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장혜승 기자] 3월 정기 주주총회(주총) 시즌을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가 본격적인 몸풀기에 나섰다.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등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물론 이사회 개편, 자진 상장폐지까지 요구하고 나서 공세 강도가 높아졌다. 개인투자자 급증으로 소액주주 결집이 쉬워졌고 지난해 일반주주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안이 연이어 개정되면서 판이 깔렸다는 평가다.
◆ 주주서한에 '자진 상폐'까지…행동주의, 전면전 양상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인 트러스톤자산운용, 팰리서캐피탈, 얼라인파트너스 등이 최근 본격적인 주주제안에 나섰다.
우선 트러스톤자산운용(이하 트러스톤)은 이날 태광산업에 발송한 주주서한에 '소수주주 지분 전량 매입을 통한 자진 상장폐지' 안건을 포함한 7개 주주제안을 담았다.
트러스톤 측은 "소수주주가 보유한 유통주식 23만주 전부를 매입해 상장을 폐지하라"며 "태광산업은 시가총액의 2.4배에 달하는 투자자산과 4배에 달하는 자본을 보유하고도 주주 가치를 철저히 외면해 왔다. 회사가 상장사로서의 의무를 다할 의지가 없다면 차라리 소수주주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상장 폐지하는 것이 자본시장 전체의 발전을 위해 나은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트러스톤은 KCC도 타겟으로 삼았다. 11일 KCC에 발송한 주주서한을 통해 4가지 주주제안을 했다. △주주들의 의사를 이사회에 전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 △비핵심자산인 삼성물산 주식 유동화 △임직원 보상용을 제외한 자사주 소각 △주주환원정책 재수립 등을 요구했다.
LG화학의 지분을 1% 이상 보유한 영국계 행동주의 펀드 팰리서캐피탈은 LG화학에 주주제안서를 제출, LG에너지솔루션 지분 10%가량을 매각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해 10월 회사가 보유한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을 활용한 자사주 매입 실시 등 주요 제안 사항을 공개한 데 이어 약 4개월 만이다.
팰리서캐피탈은 주주들이 주총에서 권고적 주주제안을 제안할 수 있도록 정관을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순자산가치(NAV) 할인율을 정기적으로 공시하고, NAV 할인율·자기자본이익률에 연동되는 핵심성과지표(KPI)를 기반으로 경영진 보상 체계를 개편할 것도 제시했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얼라인파트너스)은 에이플러스에셋어드바이저에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8대 핵심 과제를 담은 주주서한을 발송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에이플러스에셋의 지분 18.05%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주주서한에서 "에이플러스에셋은 국내 법인보험대리점(GA) 시장에서 우수한 영업성과와 계약 유지율 등을 기록하고 있는 우량 기업이나, 2월 6일 기준 PBR은 1.8배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업가치 제고계획(밸류업 플랜)의 조속한 발표 △개정 상법 입법 취지를 반영한 이사회 독립성 개선 조치 시행 등 8가지 주주제안을 제시했다. 정관 변경·감사위원 독립이사 2인 선임·이사 보수한도 승인 등도 요구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앞서 DB손해보험에도 공개서한 발송을 통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8개 항목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내달 6일까지 공개적인 서면 답변과 밸류업 플랜 재발표를 요청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공개서한에서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2인의 분리 선임도 요구했다.
◆ 주주 권리 강화 상법 개정안에 판 깔려…행동주의 공세 강화 예고
시장에서는 행동주의 펀드의 활발한 움직임에 대해 개인투자자가 증가한 데다 일반주주들의 권리를 강화한 상법 개정안이 지난해 연이어 통과하면서 힘을 실었다고 본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19년 약 600만명이던 개인투자자들은 2024년말 1410만명으로 2.4배 급증했다. 여기에 개인 주주들이 IT 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플랫폼으로 결집하며 주주 활동을 촉진했다. 양대 소액주주 IT 플랫폼 가입자는 지난해 7월 기준 16만5000명이다.
주주행동주의가 늘면서 주주제안도 활발해지는 추세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정기주주총회에서 총 42개 상장회사에 164건 주주제안이 상정됐다. 2024년 대비 20% 증가한 수치다. 특히 지난해 7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상법 개정으로 소액주주들이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수월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법 개정안에는 집중투표제 의무화, 3%룰 등이 포함됐다.
3월 주총까지 주주제안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법무법인 율촌은 지난달 발표한 '2026 정기주주총회 프리뷰'에서 "올해 주총은 그 어느 해보다 격동적인 환경에서 치뤄질 것"이라며 "올해 주총 3대 요소로 상법 개정, 스튜어드십 코드, 행동주의펀드를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율촌 관계자는 "얼라인은 지난해 12월 5개 상장기업에 대한 보유목적을 경영참여로 공시하며 적극적인 주주활동 의지를 드러냈고, 트러스톤자산운용, 라이프자산운용 등 공개적인 주주활동을 펼치고 있는 자산운용사들과 소액주주들 역시 올해 주총에서 배당요구,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및 기업가치제고와 관련된 주주제안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