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순규 기자]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의 밤하늘을 가른 것은 단순한 스노보드가 아니었다. 그것은 불모지라 불리던 한국 설상 종목의 편견을 깨뜨리는 날카로운 '비상(飛翔)'이었다.
18세의 고교생 스노보더 유승은(성복고)이 10일 오전(한국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여자 스노보드 빅에어 결선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1,2차 시도 합산점수 171.00점을 기록하며 무라세 고코모(일본·179점), 조이 사도스키 시넛(뉴질랜드·172.25점)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이는 한국 스노보드 빅에어 역사상 최초의 결선 진출이자, 최초의 메달이다. 더불어 전날 김상겸의 은메달에 이은 이번 대회 두 번째 메달로, 한국 스키·스노보드는 사상 최초로 단일 올림픽 '멀티 메달'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유승은의 동메달이 더욱 값진 이유는 그 과정의 '담대함'에 있다. 빅에어는 아파트 10층 높이에서 뛰어내려 공중 동작을 수행하는, 공포와의 싸움이 필수적인 종목이다.
하지만 유승은은 결선 1, 2차 시기에서 세계 최정상급 기술인 '트리플 콕 1440'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한때 1위를 질주했다. 특히 마지막 3차 시기에서의 선택은 그녀가 단순한 유망주가 아닌 '승부사'임을 증명했다. 이미 동메달을 확보한 상황에서 안주하지 않고, 금메달을 위해 더 높은 난이도에 도전하다 넘어진 장면은 실패가 아닌 '위대한 도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영광의 뒤편에는 10대 소녀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지난 1년 사이 발목 복사뼈 골절, 팔꿈치 탈골, 손목 골절 등 치명적인 부상이 연이어 그녀를 덮쳤다. 몸을 던져 회전하고 착지해야 하는 종목 특성상, 뼈가 부러지는 트라우마는 선수의 몸을 굳게 만든다. 하지만 유승은은 그 두려움을 기술적 완성도로 극복해냈다. 깁스를 풀고 다시 눈 위에 선 그녀에게 부상은 은퇴의 이유가 아니라, 더 높이 날아오르기 위한 도움닫기였을 뿐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이상호가 은메달을 따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 불렀다. 하지만 2026년, 우리는 유승은과 김상겸을 통해 한국 스노보드가 더 이상 기적에 의존하는 종목이 아님을 확인했다. 알파인(평행대회전)에 국한되었던 메달권이 프리스타일(빅에어) 영역으로 확장되는 종목의 다변화에 성공했다. 단일 대회에서 복수의 메달리스트를 배출하며 선수층의 저변과 경쟁력이 세계 수준에 도달했음을 입증했다.
이제 한국은 설상 종목의 변방이 아니다. 유승은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한국 동계 스포츠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유승은은 이제 겨우 18살이다. 그녀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번 올림픽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1, 2차 시기의 퍼포먼스는 4년 뒤 그녀가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 있을 것임을 예고하는 강력한 복선이다.
차가운 설원 위에서 뜨거운 열정으로 중력을 거스른 유승은. 그녀의 비상은 한국 스노보드의 새로운 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한계를 규정짓지 않는 청춘의 아름다운 증명이다. 우리는 지금 한국 스노보드의 가장 빛나는 시대를 목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