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피지컬 AI' 기술 속도내는데…국내 건설업계는 걸음마


피지컬 AI 기술 상용화 초기 단계 진입
개별 공정 자동화 단계 머물러 있는 건설업
전략적 인프라 구축…패러다임 전환 필요

현대자동차그룹 보스턴다이내믹스 아틀라스가 지난달 5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6 현대차그룹 미디어 행사에서 참가자들에 인사를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더팩트|이중삼 기자] 인공지능(AI)은 이미 건설현장에 들어와 있다. 중장비 자율제어와 정밀 굴착은 이제 흔한 기술이 됐다. 그러나 스스로 판단해 움직이는 '피지컬 AI'가 본격 등장한 지금 국내 건설업계는 아직 출발선에 서 있다. 해외 빅테크 기업들이 휴머노이드 로봇과 로봇 플랫폼으로 노동현장을 바꾸는 동안 국내 건설업은 데이터와 기술 기반을 충분히 쌓지 못해 경쟁력 격차가 벌어질 기로에 섰다.

17일 딜로이트 보고서에 따르면 피지컬 AI는 기계가 물리 세계를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이해한 뒤 추론과 상호작용까지 수행하는 기술을 뜻한다. 자율주행차·휴머노이드 로봇·사족보행 로봇·드론·자율운행 장비가 대표적 구현체다. 핵심은 시각 인지와 언어 이해를 실제 동작으로 연결하는 로보틱스용 파운데이션 모델이다.

구글 딥마인드와 엔비디아는 범용 휴머노이드 모델과 물리 엔진 기반 시뮬레이션 플랫폼을 앞세워 생태계 주도권 경쟁에 나섰다. 현대자동차그룹 로봇 전문 계열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도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공개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관절 자유도와 구동 시간 측면에서 인간의 물리적 한계를 빠르게 넘어서는 단계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10월 3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서예원 기자

◆ 중장비 자율제어 성과…범용 AI와는 간극

건설산업도 이 흐름에서 완전히 뒤처진 상태는 아니다. 중장비 자율제어를 중심으로 일정 수준 성과를 냈다. 기존 장비에 자율주행 기능을 결합하거나 정밀 굴착과 정지·경로 제어를 수행하는 소프트웨어가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

다만 피지컬 AI 관점에서 보면 적용 범위는 제한적이다. 정형화된 작업 조건에서는 효과를 보지만 현장 전반을 포괄하는 범용 작업 수행 능력과 환경 적응력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건설 특화형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도 일부 진행 중이지만 프로젝트별로 고립된 데이터 구조와 행동 데이터 부족이 한계로 지적된다.

이규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건설분야 피지컬 AI 기술은 개별 장비나 특정 공정 단위 자동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디지털트윈·현장 데이터·AI 학습 체계가 통합된 플랫폼 수준 생태계는 아직 형성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건설현장은 날씨·지반·숙련도·장비 상태·작업 순서 등 수많은 비정형 변수가 동시에 작용한다"며 "그러나 대부분 데이터는 간소화된 사후 기록을 담은 문서 형태화돼 있고 사업 단계별로도 단절돼 있다. AI가 학습할 수 있는 실제 현장 행동 데이터가 부족한 실정이다"고 지적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건설분야 피지컬 AI 기술이 개발 장비나 특정 공정 단위 자동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분석했다. /뉴시스

◆ 핵심 공종 집중·데이터 축적이 관건

건산연은 최근 '피지컬 AI 기술 확산과 건설분야 시사점' 보고서에서 무리한 전면 디지털화보다 단계적 접근을 주문했다. 표준화 가능성이 높은 핵심 공종을 중심으로 실전 행동 데이터를 집중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반복성과 위험도가 높은 고소작업·굴착·용접 공종이 우선 대상이다.

보고서는 BIM과 디지털트윈을 피지컬 AI 조기 상용화 기초 인프라로 제시했다. 비정형 건설현장을 가상 공간에 정밀 복제하면 실제 로봇 투입 전 수만 번의 시뮬레이션 학습이 가능해지고 이 학습 결과가 현장 정밀 제어 역량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피지컬 AI 확산은 건설산업의 생산 체계와 노동 구조 재편도 예고한다. 반복적이고 위험한 공정은 로봇이 담당하고 숙련 인력은 로봇 감독과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역할로 이동하는 흐름이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기술과 데이터를 선점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 격차는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높은 초기 투자비와 수익성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서비스형 로봇 중심의 단계적 도입과 정책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건설현장을 단순 시공 공간이 아닌 데이터 생성과 검증의 장으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피지컬 AI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크다.

보고서는 "프로젝트 종료와 함께 휘발되던 현장 경험을 재사용 가능한 데이터 자산으로 전환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표준화된 AI 인프라를 전략적으로 수용해 고유한 현장 데이터와 결합할 때 건설산업의 새로운 경쟁력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국가 정책적으로는 건설현장의 데이터 축적과 활용을 전제로 한 발주 기준을 수립해 데이터 선순환 구조를 유도해야 한다"며 "이와 함께 기술 상용화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 디지털트윈과 로보틱스·AI 기술을 현장에서 검증할 수 있는 실증 환경의 조성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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