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손원태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설탕 부담금' 도입 논의를 거듭 언급하면서 음료업계에 당혹감이 퍼지고 있다.
업계는 현재 내수 침체 장기화와 고환율에 따른 원가 상승으로 이중고를 겪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설탕과 시럽을 주원료로 하는 음료 제조 공정 특성상 부담금 도입은 결국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 역시 이미 저당 제품군이 시장에 안착한 상황에서 국민 건강권을 내세운 정부의 의도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 "설탕 부담금, 국민 건강권 문제" 대통령 발언에 정치권 논의 속도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설탕세는 당류가 과다 첨가된 음료나 가공식품에 세금이나 부담금을 매겨 섭취를 억제하는 제도다. 비만, 당뇨 등과 같은 만성질환을 억제하기 위해 노르웨이와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100여개 국가가 설탕세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일반적으로 탄산음료 한 캔(350㎖)에는 약 40g의 설탕이 들어있다. 이에 탄산음료를 하루에 두 캔씩 정기적으로 마시면 제2 당뇨병 발병 위험이 일반 사람들보다 26%가량 더 높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설탕이 첨가된 음료에 20% 이상 세율로 설탕세를 부과하면, 소비자들의 영양 개선과 비만 감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세계 각국에 설탕세 도입을 권고했다.
국내에서도 지난 2021년 설탕세 도입 논의가 있었으나, 저소득층의 가계 부담과 물가 인상 우려로 공론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이 가당 음료 ℓ당 225~300원의 부담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며 관련 논의가 재점화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일주일 사이 설탕세 도입 논의 필요성 두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자신의 X(구 트위터)에 "담배처럼 설탕 부담금으로 설탕 사용 억제, 그 부담금으로 지역·공공의료 강화에 재투자…여러분 의견은 어떠신가요"라는 글을 올렸다.
지난 1일에도 "설탕 부담금 도입 여부에 대해 깊이 있고 냉철한 논쟁을 기대한다"고 글을 남기며 재차 토론을 제안했다. 청와대도 국민건강권 문제 및 지역·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재투자 재원으로 활용 방안 등에 대해 각계 의견을 수렴해 검토할 계획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오는 12일 정태호 의원 주최로 '설탕 과다사용부담금 국회 토론회'를 개최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여당은 설탕'세' 대신 '부담금'이라는 명칭을 썼다. 자칫 증세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는 이유다.
◆ 저성장·고환율에 허덕이는 음료업계…느닷없는 설탕 부담금에 '술렁'
대통령이 설탕 부담금 도입을 공론화하자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음료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내수 침체 현상이 장기화하고 있고, 고환율 여파로 원재료 부담도 커진 상황에서 음료시장 자체가 위축되고 있어서다.
국내에서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사업을 전개하는 LG생활건강과 롯데칠성음료도 지난해 실적이 주춤했다. LG생활건강은 지난해 음료사업 매출이 1조7707억원으로, 전년(1조8244억원) 대비 2.9% 감소했다. 롯데칠성음료은 지난해 3분기 누계 음료사업 매출이 1조4386억원에 그치며 전년 동기 대비 4.6% 하락했다.
수익성에서도 LG생활건강은 지난해 음료사업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5.5% 감소한 1420억원에 그쳤다. 롯데칠성음료 역시 지난해 3분기 누계 음료사업 영업이익이 91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2% 감소했다. 양 사 모두 고환율 여파로 인한 원가 부담이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내수 침체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음료 전반으로 시장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식품산업통계정보(FIS)가 집계한 국내 소매점 판매 통계를 보면, 지난해 상반기 과채음료(주스) 시장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8.2% 하락한 2826억원을 기록했다. 이 기간 커피음료 시장 규모도 2.7% 감소한 6446억원을 나타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설탕세(부담금)가 도입되면 가공식품과 음료 등의 전방위적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가격 인상을 최대한 자제해도 시기의 차이일 뿐 결국 저소득층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설탕을 두루 사용하는 식품업체 특성상 원가 부담으로 인한 가격 인상은 매출, 수익 감소라는 중장기적인 식품산업 성장세를 둔화시킬 것"이라며 "식품업계 전반 경영 악화는 물론 고용 감소라는 악재도 덮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국민 건강권'을 내세운 정부의 명분이 시장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이미 '헬시 플레저' 트렌드에 따라 제로 슈거와 저당 제품이 폭넓게 출시되어 소비자 선택권이 충분히 보장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 관심도는 전 세계적으로 최상위권으로 비만 문제는 여느 국가와 상황이 다르다"면서 "설탕세는 단순 식품업체의 가격 인상으로 그치지 않고, 커피전문점이나 외식업체로도 영향이 미쳐 고물가 기조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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