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000 시대 열렸지만…'대미 투자'와 '환율' 리스크 부상


대미 투자 압박에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 우려
IMF "한국, 환율 변동성에 취약한 구조"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5000선을 돌파한 가운데, 대미 투자 집행과 환율 변동성이 향후 증시의 최대 변수로 부각되고 있다. /송호영 기자

[더팩트ㅣ박지웅 기자]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5000선을 돌파하며 이재명 정부가 내건 '코스피 5000 시대'가 현실화됐지만, 시장의 관심은 곧바로 '대미 투자'와 '환율' 리스크로 옮겨가고 있다. 원화 약세 국면에서 대규모 대미 투자가 본격화될 경우 외환시장 변동성이 증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5000 돌파의 의미보다 이후 지수 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오전 9시 29분 기준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1.14%(56.59포인트) 상승한 5009.12에 거래되고 있다. 정책 기대와 실적 개선, 글로벌 위험자산 선호가 지수를 끌어올렸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5000선 돌파 이후 지수의 지속 가능성을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변수는 대미 투자 집행 시점과 규모다. 최근 블룸버그는 한국 정부가 원화 약세와 외환시장 불안을 이유로 올해 예정된 연간 2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미룰 수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1월 한·미는 총 3500억달러 대미 투자에 합의했으며, 이 가운데 1500억달러는 조선 분야, 나머지 2000억달러는 장기 투자로 분류돼 연간 200억달러 한도 내에서 집행되도록 설계돼 있다. 관련 양해각서(MOU)에는 외환시장 불안 시 집행 시기와 규모를 조정할 수 있는 조항도 포함돼 있어, 정부는 투자 속도 조절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실제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최근 외신과 인터뷰에서 "대미 투자는 올해 상반기 중 본격 집행되기 어렵다"며 고환율 국면에서의 달러 유출 부담을 의식한 신중론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투자 이행을 거듭 강조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집권 2기 1주년 기자회견에서 한국·일본과의 무역 합의를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며, 한국의 대미 투자금이 알래스카 LNG(가스관) 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총사업비 450억달러에 달하는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고위험 사업으로 분류돼 왔고, 한국 정부는 그동안 상업적 합리성을 이유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 왔다. 이 같은 발언은 대미 투자 집행을 둘러싼 한·미 간 시각 차를 넘어, 한국을 향한 투자 이행 압박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대미 투자 집행을 둘러싸고 환율 부담을 의식한 한국의 신중론과 조기 이행을 압박하는 미국의 온도 차가 뚜렷해지고 있다. /APEC 2025 KOREA

이 지점에서 시장이 특히 경계하는 대목이 '환율'이다. 원화 약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규모 대미 투자가 본격화될 경우, 달러 수요 확대를 통해 원·달러 환율이 다시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환율 상승은 외국인 수급 악화와 기업 이익 전망 훼손으로 이어져, 코스피 5000선 유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장은 "대미 투자까지 본격화될 경우, 유동성 확대에 따른 수급 요인과 달러 유출이 겹치면서 환율 급등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유동성 공급이라는 근본 원인을 건드리지 않은 채 해외 투자와 대미 투자가 동시에 진행되면 외환시장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환율 압박을 키우는 구조적 요인으로는 미국 주식 쏠림 현상도 꼽힌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액은 1705억달러(약 251조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보다 불과 2주 만에 69억달러(약 10조원) 늘어난 수치다. 원·달러 환율이 1470원을 웃도는 고환율 국면에서도 '서학개미'들의 해외 투자 확대가 이어지며, 달러 수요를 상시적으로 자극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한국 외환시장의 구조적 취약성도 부담 요인으로 지적된다. 지난 18일 국제통화기금(IMF)이 공개한 '글로벌 금융 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외환시장 규모 대비 환노출 달러 자산 배율은 25배로 조사 대상 20개국 중 5위를 차지했다. 이 배율이 높을수록 환율이 조금만 움직여도 환위험을 회피하려는 달러 매매가 한꺼번에 쏟아져 변동성이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IMF는 "일부 국가는 환노출 달러 자산이 외환시장의 깊이에 비해 불균형적으로 크다"며 "리스크 회피가 단기간에 집중될 경우 과도한 환율 변동성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요인들이 맞물릴 경우 환율과 증시의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코스피 5000선이 정점이라는 불안이 확산되면 자산 이탈이 가속화되며 환율을 다시 끌어올리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며 "최근의 고환율은 대규모 해외 투자와 무관하지 않은 만큼, 국내 증시가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확신을 주는 정책적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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