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그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배우 문가영의 여러 얼굴과 감정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본 사랑과 이별의 과정 안에서 인물의 감정을 주입하지 않고, 보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느끼고 빠져들 수 있도록 섬세한 연기를 펼친 그는 그렇게 '만약에 우리'로 자신의 진가를 또 한 번 입증했다.
2025년 마지막 날에 개봉한 영화 '만약에 우리'(감독 김도영)는 뜨겁게 사랑했던 은호(구교환 분)와 정원(문가영 분)이 10년 만에 우연히 재회하며 기억의 흔적을 펼쳐보는 현실 공감 연애를 그린 작품이다. 중국 영화 '먼 훗날 우리'(2018)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82년생 김지영'(2019)을 선보였던 김도영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만약에 우리'는 원작의 매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한국적 감성을 자연스럽게 덧입히며 성공적인 리메이크작을 넘어 독립적으로 완결된 멜로 영화로서 호평받고 있다. 이에 힘입어 CGV 골든에그지수 97%(16일 기준)를 기록 중이고, '아바타: 불과 재'를 꺾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쾌거를 거뒀다.
이러한 흥행의 흐름 속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문가영의 연기 칭찬이다. 그는 은호의 첫사랑이자 헤어진 전 여자친구 정원 역을 맡아 9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고, 데뷔 첫 상업영화에 도전했다.
보육원 출신의 대학생인 정원은 고달픈 서울살이에도 자신의 집을 짓고 싶은 꿈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나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친구가 된 은호와 연인으로 발전하면서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안정감을 얻고, 함께 지내고 웃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뜨겁게 사랑한다.
하지만 게임을 만들고 싶은 은호와 건축가가 되고 싶은 정원은 각자의 꿈을 놓지 않으면서도 이를 가로막는 차가운 현실에 때때로 좌절하는 청춘이다. 두 사람은 함께 어려운 일에 맞서다가 점점 균열이 생기면서 결국 다른 길을 선택한다.
이러한 인물을 만난 문가영은 진한 스모키 메이크업와 서툴게 칠한 네일아트 등으로 지금껏 보여준 적 없는 강렬한 외적 비주얼을 완성하고, 담배를 피우면서 강해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흔들리는 청춘 그 자체로 존재한다. 여기에 높은 목소리 톤과 해맑은 웃음, 정확히 문장을 끝맺지 않는 말투 등으로 20대의 천진난만함도 제대로 살린다.
이후 그는 짙은 메이크업을 점점 덜어내면서 안정감을 찾고 성숙해지는 인물의 내적 변화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또한 미묘하게 바뀌는 눈빛과 표정, 호흡만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는 청춘의 현실부터 은호와 어긋나면서 점점 지쳐가는 모습까지 표현한다.
더 나아가 이별을 겪고 성숙해진 커리어우먼의 얼굴까지 꺼내며 10년이 넘는 세월을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문가영이다. 디테일한 외적 비주얼의 변주는 물론, 지치지만 결코 꺾이지 않는 인물의 미묘한 감정선과 복잡다단한 내면을 섬세하게 빚어내면서 말이다.
실제로 14살 차이가 나는 구교환과의 멜로 합도 좋다. 두 사람은 자연스러운 일상 연기와 예상할 수 없어서 더 집중하게 되는 호흡과 티키타카로 진짜 친구 같은 케미를 완성한다.
이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문가영의 우는 얼굴이다. 버스 안에서 은호의 전화번호를 지우고 턱이 심하게 떨릴 정도로 울음을 삼키더니, 은호의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읽으면서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뚝뚝 흘린다. 이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계속 잔상이 남으면서 짙은 여운을 선사한다.
이렇게 문가영은 인물의 감정을 과장하지 않되 깊이감을 놓치지 않으면서 비현실적인 일만 일어나는 영화 속 아름다운 여주인공이 아닌, 누구나 겪을 법한 현실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법한 사람으로서 존재한다.
이는 그가 이번 작품에 유독 더 많은 노력을 쏟았다거나 운이 따랐기에 완성된 결과물은 아니다. 2006년 영화 '스승의 은혜'를 통해 아역 배우로 데뷔한 후, 드라마 '위대한 유혹자' '그 남자의 기억법' '여신강림' '사랑의 이해' 등 다양한 결의 로맨스 장르를 소화하며 탄탄한 내공을 쌓아왔기에 가능하다.
자신의 경험치를 모두 쏟아붓고 변주도 꾀한 문가영은 풋풋한 청춘부터 사회 초년생의 현실과 꿈을 이룬 커리어우먼까지, 다채로운 얼굴을 꺼내며 자신의 스펙트럼을 성공적으로 확장시켰다. 또한 스크린을 장악하는 감정 전달력까지 보여주며 앞으로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기분 좋은 충격을 선사할지에 대한 기대감도 충분히 심어줬다.
한편 '만약에 우리'는 '아바타: 불과 재'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개봉 13일째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며 누적 관객 수 125만 명을 기록 중이다. 작품의 완성도와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식지 않는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어떤 새로운 기록을 써 내려갈지 이목이 집중된다. 전국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