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베네치아, 인천-15] 지역 성장 블루오션…왜 '뮤직시티'인가


K-팝 등 음악의 힘…지역 성장 인식 결과
대중 누구나 쉽게 접근하는 공간 조성해야

‘비비드 시드니’는 호주 최대 규모의 빛, 음악, 음식 축제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관광청

'동북아 베네치아, 인천'은 인천이 지닌 역사적, 문화적 자원을 바탕으로 미래형 해양도시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시리즈로서 <더팩트>와 인천학회(회장 김경배)가 공동으로 기획 연재한다. 2017년 9월 출범한 인천학회는 인하대, 인천대, 청운대, 인천연구원, 인천도시공사,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국내 최초의 지역학회로서 인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연구하는 지식공동체이다. 300만 대도시 인천의 도시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정책과 담론을 형성하고 다양한 해법을 찾아가는 학술 활동의 성과는 다른 도시에도 적용될 수 있는 국가 발전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동북아 베네치아' 제목은 글로벌 해양도시로서 관광, 물류의 세계 거점 도시를 향한 인천의 발전 가능성과 미래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연재는 인천의 잠재력을 재조명하고, 시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감의 장을 마련한다. 또 동북아 해양 네트워크의 중심 도시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이슈를 제공하고, 단순한 도시의 확장을 넘어 살고 싶은 지속가능한 도시의 미래는 어떻게 조성돼야 하는지 그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최근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뮤직시티' 조성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인천 부평구문화재단은 지난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모한 '문화특화지역 조성 사업'에 선정돼 도시의 문화 정체성을 음악에서 찾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이를 이어 2021년에는 문화도시로 지정됨에 따라 부평이 지속적으로 추진한 음악도시 사업이 제도적·정책적 성과로 이어졌다.

서울 도봉구는 2019년 '뮤직시티 도봉'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침체된 지역 사회를 탈피해 한국 음악의 새로운 중심지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서울아레나 건설, 지역 예술인 육성 지원, '뮤직시티 커넥션' 등의 행사를 추진해 K-팝을 중심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가치를 문화 브랜드이자 지역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 대구시는 아시아 음악 창의도시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글로벌 2030 계획'을 추진 중이다. 경남도 통영시는 '통영국제음악제'와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 등을 열어 도시의 문화 정체성을 음악에서 찾고 있다. 경기도 의정부시도 IT·문화 융합도시인 '의정부 리듬시티'를 지난 4월 준공했고, 의왕시는 'K-뮤직밸리' 조성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처럼 뮤직시티는 새로운 지역 성장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지난 2013년 싸이의 '강남스타일' 흥행 이후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K-팝 뮤지션들의 세계적 활약 속에서 '음악의 힘'이 지역 성장의 블루오션으로 인식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뮤직시티의 지향성과 이를 바라보는 내·외부의 인식과 평가 기준 등을 고려할 때 현재 다수 지자체가 추진 중인 뮤직시티 사업의 성공 가능성에는 적지 않은 물음표를 던진다. 관 주도의 계획수립과 사업 진행, 이후 주민 설명회나 공청회를 통해 동의를 구하는 방식은 주민 입장에서 '우리 도시가 왜 뮤직시티인가?'라는 반문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뮤직시티는 음악이라는 문화와 도시라는 삶의 공간이 만나는 지점이다. 음악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누구나 듣고, 보고,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어야 한다. 대중이 떠올리는 뮤직시티의 이미지는 의외로 단순하기 때문에 누구나 축제를 통해 음악을 즐기고, 배우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을 바란다.

글로벌 도시로 성장한 인천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1883년 개항한 인천은 300만 명 인구의 대한민국 대표 도시로서 개항, 한국전쟁, 산업화를 거치며 국가 성장에 기여해 왔다. 한국 최초의 차이나타운이 형성된 곳이고, 2023년 실질경제성장률 4.8%로 전국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화 성장의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미흡한 수준이다. 도시의 물리적 성장과 경제적 성과에 비해 문화적 정체성과 매력은 아직 태동기에서 성장기로 넘어가는 단계 정도에 머물러 있다. 지속적인 인프라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 도시와 차별화되는 문화적 상징은 선명하지 않다. '무색무취한 도시'라는 혹평도 뒤따른다.

중국 '국어(國語)' 월어편에 나오는 '득시무태(得時無怠)'는 '때를 얻었을 때 게으르지 말라'는 뜻이다. 흔히 말하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와 같은 의미다. K-팝에 대한 관심이 단순한 주목을 넘어 팬덤으로 확장되고 있는 시점이다. 음악으로 하나 되는 공간 '뮤직시티 인천'을 구상하는 일은 충분히 도전해 볼만한 도시 전략이다. 모두가 뛰어드는 레드오션처럼 보이지만 접근 방식과 실행 전략에 따라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사고의 전환이다.

부평구의 '역사를 담고 음악이 흐르는 문화도시' 슬로건은 인천에서 가장 먼저 추진된 뮤직시티 프로젝트의 정신이다. 주한미군이 사용했던 수송기지인 애스컴 부지를 활용하면서 미군 클럽 '드림보트(Dream Boat)'가 한국 대중음악 성장 과정에서 갖는 상징성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과거의 역사만을 내세워 공연장과 교육시설을 조성한다고 해서 주민과 외부인이 '음악도시 부평'을 자연스럽게 납득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빈 공간에 시설을 짓고 '여기가 뮤직시티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행정력의 낭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부평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뮤직시티를 표방하는 대부분의 지자체가 해결해 나가야 할 공통의 과제다. 준비 없는 편승은 실패로 귀결되기 쉽고, 급히 먹은 밥이 체할 수 있으며, 기초 없는 건물은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지난 8월 20회를 맞이한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올해도 15만 명이 운집하는 등 글로벌 음악축제로 주목받고 있다. /인천관광공사

뮤직시티의 출발점은 언제나 대중의 시선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놀이터(playground)'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인천 송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나 경기 '인디뮤직 페스티벌'에서 확인하듯, 결국 뮤직시티의 성공은 이러한 음악적 경험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기적인 프로그램 운영,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기관, 녹음·녹화·창작 스튜디오, 연구기관과 행정조직, 미디어를 활용한 홍보 체계가 함께 작동돼야 한다.

인천 뮤직시티 조성을 위해 시청각적 연출, 교육·연구 인프라, 행정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첫째,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연출이다. 음악은 듣는 즐거움이지만 여기에 시각적 경험이 더해질 때 축제의 완성도는 배가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호주의 '비비드 시드니(Vivid Sydney)' 페스티벌이다. 매년 6~7월 열리는 이 축제는 빛과 음악, 도시 경관이 어우러지며 2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남반구 최대의 문화 행사로 자리 잡았다. 항구도시이자 관문의 도시라는 점에서 시드니와 인천이 닮았다. 인천대교 등 도시 자원을 활용한 시청각 융합형 페스티벌을 충분히 구상해 볼만하다.

아울러 인천은 인천만의 간결하면서도 의미를 함축한 브랜드가 필요하다. 단일한 색깔을 찾기 어렵다면 단어의 조합도 하나의 방법이다. 예를 들어 'Exciting, Interesting, New'의 머리글자를 활용한 'Music City EIN(하나)'처럼 인천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다.

둘째, 학교·연구소·행정기관 간의 네트워크 구축이다. 뮤직시티의 두뇌와 심장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이를 분석·계획하며 행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주체들의 협업에서 나온다. 인하대, 인천대, 청운대 등 지역 대학과 인천연구원, 인천학회, 인천시가 유기적인 클러스터를 형성한다면 뮤직시티 인천은 구호가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

뮤직시티는 도시에 문화의 숨결을 불어 넣는 작업이다. 많은 도시들이 새로운 심장과 두뇌를 찾고 있다. 문화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지금, 도시들은 변화를 향해 달리고 있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았듯 간판만으로 도시는 바뀌지 않는다. 인천이 뮤직시티를 준비한다면 달라야 한다. 타 도시의 성공과 실패를 교훈 삼아 인천만의 창의적 계획을 세우고,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다뤄야 한다. 역사가 숨 쉬는 산업·항구도시 인천이 '뮤직시티 인천'으로의 진화는 충분히 가능하다.

글=홍기창 인천학회 회원·도시계획학박사

기획=김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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