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유연석 기자]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3370만명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 발생 한 달 만인 지난 28일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그동안 악화한 여론과 사태 수습의 변곡점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사과의 형식과 내용, 그리고 국회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일련의 행보가 여론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오는 30~31일 국회서 열리는 연석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통보하면서 사과의 진정성마저 의심받는 상황이다.
◆ 사과문 내고 국회는 불참…이율배반적 행보 비판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김범석 의장은 전날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태 이후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김 의장은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의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 그동안 지적받아온 "초기 대응 미흡과 소통 부족"을 인정했다.
사과가 늦어진 데 대해선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 사과하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면서도 "돌이켜보면 잘못된 판단"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유출자 컴퓨터에 저장된 고객 정보는 3000건이고, 유출된 정보를 모두 회수했다"며 유출 규모가 제한적이라는 자체 조사 결과를 강조했다.
유출사태 이후 한 달 만에 나온 김 의장 명의의 첫 사과임에도 사과 시점이나 형식, 내용 등이 악화한 여론을 잠재우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단 사과문 발표 시점이 오는 29~30일 열리는 국회 연석 청문회에 불출석한다는 사유서를 제출한 직후다. 김 의장은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고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고 사과했지만, 여전히 직접 소통은 피하는 모양새여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이번에 열리는 연석 청문회는 김 의장의 반복된 국회 무시도 적잖게 영향을 끼쳤다. '글로벌CEO, 해외 거주, 농구를 하다 다리를 다쳐서' 등을 이유로 그는 10년간 국회의 부름을 회피했다.
이번에도 해외 거주와 예정된 일정으로 참석이 어렵다고 했다. 실질적 책임 추궁이 이뤄지는 청문회장엔 또다시 대리인을 내세워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형식과 내용도 논란이다. 형식면에서는 글로 된 사과문 한 장에 불과했다. 유출 사고 발생 한 달이나 지나서 하는 사과임에도 글로만 사과했다. 그러면서 그 내용에선 자체 조사 결과를 강조했다.
그는 "유출된 정보가 100% 회수됐고, 외부 유포는 없었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이는 제3의 전문 기관 검증을 거치지 않은 쿠팡 자체 조사 결과로 소비자들이 신뢰하기는 어렵다.
이를 두고 단순한 해명이 아니라, 향후 법적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철저히 계산된 전략이라고 분석도 제기된다. 이미 사건이 마무리된 것처럼 규정함으로써 피해 규모를 축소하고, 특히 미국 내 소송에서 방어 논리를 구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전날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를 두고 "사과문이 아니라 변명문이자 셀프 면죄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29~30일 연석 청문회 맹탕 전망…김범석 책임론 부각
사과문 발표 전에 공개된 반박문의 국·영문 버전 차이도 논란이다. 쿠팡은 한국어로는 "불필요한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고 표현했으나, 영문 성명에서는 이를 '잘못된 불안감(false insecurity)'으로 번역했다. 또한 "억울한 비판"이라는 표현을 영문으로는 '잘못된 비난(falsely accused)'이라고 적시했다.
이는 한국 내 비판 여론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미국 투자자와 법정에 강조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국내 소비자는 '사과'로 달래고, 미국에서는 '무고함'을 주장하는 이중적인 태도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편 오는 30~31일 예정된 국회 연석 청문회는 '맹탕'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김범석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부사장, 강한승 전 대표 등 핵심 증인들이 줄줄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김 부사장은 김 의장과 마찬가지로 '해외 거주'와 '기존 예정된 일정'을 불출석 사유로 제시했다. 강 전 대표는 "대표이사를 사임한 지 이미 7개월이 경과한 상황에서 회사의 입장을 대표해 증언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했다.
청문회가 맹탕이 되면 김범석 의장 책임론은 재차 부각될 여지가 크다.
이미 국회는 단단히 벼르고 있다.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김 의장이 불출석할 경우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입국 금지 조치까지 검토하겠다"며 초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여당인 국민의힘 역시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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