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다빈 기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의 정치권 인사 관리를 담당한 산하 단체들이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 취임 이후 세계본부 소속으로 편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권 로비 의혹이 윤 전 본부장 개인 일탈이라는 통일교 해명과 달리 조직적 전방위 정치인 접촉이 의심된다. 경찰이 송모 전 천주평화연합(UPF)·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국민연합) 회장을 입건하면서 또 다른 통일교 산하 단체 및 고위급 간부들로 수사가 확대될 전망이다.
24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윤 전 본부장은 지난 2020년 5월 세계본부장에 취임했다. 통일교는 윤 전 본부장 취임 후 이전까지 별도의 기관으로 분리돼 있던 UPF와 국민연합을 세계본부 아래로 조직 체계를 개편했다. 이때부터 윤 전 본부장은 통일교 정책 기획과 자금 관리를 총괄하는 등 '통일교 2인자'로 불리며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섰다.
UPF와 국민연합은 통일교의 정치권 인사 관리를 담당한 대표적 단체다.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국내·외 각종 행사를 주관하고, 한·일 해저터널 관련 포럼 등도 주최했다. 단체 고위급 간부들은 수많은 정치인들과 교류를 맺었고, 이를 토대로 각종 행사에 정치인들이 참석했다. 통일교 내부에서는 정치권 교섭을 목표로 하는 사실상 정치인 대상 로비를 벌이는 단체라는 의견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축사나 강연 등을 명목으로 고액의 금품을 건넸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세계본부 1년 예산은 약 1500억~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22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통일교에서 영상 형식의 30분 강연을 세 차례 한 뒤 33억원 가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입건된 임종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도 송 전 회장을 접촉했다. 다만 이들은 금품 수수는 없었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단체들은 행사에 필요한 예산을 지원받기 위해 윤 전 본부장의 결재를 거쳐야 했다. 윤 전 본부장 역시 한학자 총재나 정원주 전 비서실장에게 특별 보고를 하는 체계였다. 윤 전 본부장의 지시나 승인을 통해 조직이 움직인 것이다. 이번 의혹이 윤 전 본부장 개인의 일탈이라는 통일교 해명과 엇갈린다.
통일교 관계자는 "UPF나 국민연합 위에 세계본부가 있었기 때문에 각 단체장들이 윤 전 본부장을 통해 자금을 받아야 했다"며 "조직 체계상 윤 전 본부장이 단체장들에게 돈을 주면 단체장들이 정치인 접촉이나 금품 전달 등 중간에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경찰도 통일교 산하 단체들을 이번 의혹의 핵심 창구로 의심하고 있다. 경찰은 송 전 회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하고 소환 조사를 벌였다. 수사 과정에서 송 전 회장 외에 또 다른 통일교 고위급 간부들로 의혹이 번질 가능성도 있다. 이들의 정치권 로비 가담 정황이 드러날 경우 참고인 조사 또는 피의자 입건도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통일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UPF와 국민연합의 역대 회장과 임원 등도 관련돼 있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주요 인물들로 윤 전 본부장이 금품을 제공한 시점으로 언급한 지난 2018~2020년 당시 핵심 역할을 맡은 문모 씨와 양모 씨 등을 지목했다.
문 씨는 한 총재의 며느리로, 지난 2018년 9월부터 UPF 한국회장으로 취임해 UPF 한국의장 등을 역임했다. 2019~2021년에는 한·일 해저터널 사업 추진을 위해 설립된 피스로드 조직위원회 위원장도 겸했다.
양 씨는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세계일보 부회장을 지냈으며, 2020년부터 UPF 세계의장을 맡고 있다. 2023년에는 세계피스로드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양 씨 역시 통일교 내 요직을 거친 한 총재 핵심 측근으로 알려졌다.
통일교 관계자는 "통일교는 교회조직과 사회활동조직, 그리고 재단관리조직이 있는데 정치권 로비는 UPF와 국민연합을 통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며 "두 조직의 역대 회장 및 임원 등이 로비 관여를 의심받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두 통일교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다. 총재에게 잘 보이고 통일교에서 높은 자리를 보존하려면 정치인들과의 인맥은 필수"라고 덧붙였다.
경찰 관계자는 "현 상태에서는 이들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확인이 어렵다"면서 "수사 중 필요성이 있으면 참고인 조사 등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