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용사 M&A 약점, 이지스자산에서 터졌다


본입찰 뒤 '프로그레시브 딜' 두고 공정성 공방 지속
LP·핵심인력 변수 커져…절차 신뢰가 '핵심'

이지스자산운용 매각이 프로그레시브 딜 적용 여부를 둘러싸고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이지스자산운용

[더팩트|윤정원 기자] 이지스자산운용 매각이 본입찰 이후 절차를 둘러싼 공정성 논란으로 번지면서, 자산운용사 인수합병(M&A)의 거래 설계 리스크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가격을 끌어올리는 방식이 오히려 운용 안정성과 신뢰를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지스자산운용은 지난해 말 기준 약 67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다. 창업주 사망 이후 유가족의 상속세 재원 마련 필요가 부각되면서 유가족 지분을 포함한 약 98% 경영권 지분이 매각 시장에 나왔다. 매각 주간사로는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선정됐다.

◆ 우협 선정 뒤집힌 배경…'프로그레시브 딜'이 불붙였다

논란의 발단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이었다. 이달 8일 주간사 측은 중국계 사모펀드 힐하우스가 약 1조1000억원을 제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알렸다. 이후 흥국생명은 본입찰에서 1조500억원으로 최고가를 제시했음에도 결과가 뒤집혔다며, 최대주주와 매각 주간사 관계자들을 공정 입찰 방해 및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현재 시장에선 우협 선정이 뒤집힌 배경을 놓고 절차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논란의 초점은 두 가지다. 본입찰 이후 추가 제안이 가능하다는 점이 원매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안내됐는지, 그리고 경쟁 과정에서 입찰가 등 핵심 정보가 외부로 새어 나갔는지 여부다. 특히 정보 유출 의혹은 사실관계에 따라 거래 공정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논란이 '프로그레시브 딜(Progressive Deal)'의 실행 리스크라는 해석도 다수다. 프로그레시브 딜은 한 차례 본입찰로 끝내지 않고, 경쟁 후보에게 추가 제안을 유도하는 경매식 호가 구조다. 매도자 입장에선 가격을 극대화할 여지가 있지만, 절차의 예측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이해관계자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자산운용사 매각은 일반 기업 M&A와 결이 다르다는 평가가 많다. 유형자산보다 운용 인력, 트랙레코드, 투자자(LP) 신뢰가 가치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핵심 운용역이 유지되는지, 기존 펀드 운용이 흔들리지 않는지가 거래 성사와 사후 안정성의 전제 조건으로 작동한다. 이 때문에 운용사 매각에선 '가격'만큼 '절차'가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 LP·핵심인력 변수 커진다…불확실성은 '운용 리스크'

논란이 장기화하자 시장의 시선은 거래 당사자에서 펀드 투자자(LP)와 내부 운용 인력으로 옮겨가고 있다. 대형 부동산 운용사의 매각 불확실성은 펀드 관리 리스크로 직결될 수 있어서다. LP 입장에서는 인수 주체보다도 거래가 언제, 어떤 조건으로 마무리될지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일부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서는 매각 절차가 길어질 경우 펀드 운용 연속성에 대한 점검이 불가피하다는 기류도 감지된다. 신규 펀드레이징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비용으로 반영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운용사 매각이 단순한 지분 거래에 그치지 않고, 기존 펀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용 인력 이탈 가능성도 주요 변수다. 운용사의 핵심 가치가 인력에 집중돼 있는 만큼, 절차가 흔들리고 결론이 지연될수록 핵심 운용역의 동요가 커질 수 있다. 이는 곧 펀드 성과와 신뢰도에 영향을 주고, 결과적으로 매각 대상의 가치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운용사 매각은 가격보다 안정성이 중요한데, 절차가 흔들리면 내부 구성원과 LP 모두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며 "논란이 장기화될수록 운용사 가치에는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주간사의 역할론도 함께 제기된다. 증권사 IB가 가격 경쟁을 유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거래 성사 리스크와 이해관계자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운용사 매각은 매도자·인수자뿐 아니라 운용 인력과 LP까지 얽힌 다층 거래여서, 절차 설계와 커뮤니케이션의 작은 균열이 곧바로 신뢰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에선 이지스 사례가 향후 운용사 M&A 관행을 재정렬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하고 있다. 본입찰 이후 절차를 어디까지, 어떤 원칙으로 운용할지 사전에 더 명확히 하거나, 운용 인력·펀드 안정성에 대한 보호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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