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거대한 물로 세상을 덮는 재난을 앞세우지만 궁극적으로 시청자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선택과 감정이다. 인류의 마지막 날이라는 설정 속에서 '대홍수'는 블록버스터의 외피를 쓰고, 인간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다만 '대홍수'가 던지는 질문이 생각보다 많다. 불친절한 서사나 흐름이 의도한 질문 외에도 많은 물음표를 남긴다.
넷플릭스 새 영화 '대홍수'(감독 김병우)가 19일 오후 5시 전 세계에 공개됐다. 작품은 대홍수가 덮친 지구의 마지막 날,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을 건 이들이 물에 잠겨가는 아파트 속에서 벌이는 사투를 그린 SF 재난 블록버스터다.
이야기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아침에서 시작된다. 6살 아들 자인의 재촉에 잠에서 깬 안나(김다미 분)는 하룻밤 사이 물에 잠긴 세상을 마주한다. 평범했던 아파트는 순식간에 재난의 한복판이 되고, 안나는 아들을 업은 채 탈출을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인공지능 연구소 인력보안팀 희조(박해수 분)와 마주하며 이 재난이 단순한 생존 문제가 아니라 '신인류의 탄생'과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안나는 신인류에게 부족한 '감정'을 완성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서 구조자로 선택받은 것. 다만 이를 위해서는 아들 자인(권은성 분)을 포기한 채 홀로 우주선에 탑승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대홍수'의 가장 큰 미덕은 재난을 소비하지 않는 태도다. 작품 속에서 물은 파괴적인 수마(水魔)이자 동시에 생명의 근원이라는 이중적인 상징으로 기능한다. 김병우 감독은 거대한 파도와 차오르는 물을 통해 공포를 조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요동치는 인간의 감정을 시각화한다.
연출은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결을 달리한다. 전반부는 롱테이크와 밀착된 카메라로 안나의 여정을 따라가며 관객을 재난 속으로 끌어당긴다. 반면 후반부는 인물을 프레임 안에 가두는 방식으로 시선을 전환하며 상황보다 선택에 집중하게 만든다.
김다미는 이 영화의 중심을 단단히 붙든다. 인공지능 연구원이자 한 아이의 엄마, 그리고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설정은 자칫 과잉이 될 수 있지만, 김다미는 감정을 차분히 쌓아 올리며 안나의 궤적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과 지켜야 한다는 책임 사이에서 흔들리는 내면은 작품의 핵심 질문과 맞닿는다.
이처럼 대홍수가 덮친 지구의 마지막 날, 물에 잠긴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사투라는 설정은 분명 강렬하다. 하지만 이야기는 잦은 단절과 비약 속에서 방향을 잃는다.
초반부는 비교적 몰입을 이끈다. 그러나 일정 시점 이후부터 영화는 긴장감을 쌓기보다 흩뜨린다. 특히 후반부터는 극의 개연성보다 연출적 의도가 앞선다는 인상이 강해 오히려 몰입력이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재난물 특유의 압박감이 긴장으로 이어지기보다 오히려 물에 함께 잠긴 듯한 피로감을 남긴다.
서사의 가장 큰 문제는 연결이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상황을 오버랩시키는 장치는 반복적으로 사용되지만, 감정의 축적보다는 설명의 공백을 메우는 용도로 소비된다. 안나나 희조의 선택 역시 충분한 설득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받아들여지기를 요구한다.
특히 희조의 경우 예고편이나 작품 설명만 보면 안나와 함께 서사의 한 축을 구성하는 것처럼보이지만, 실제 분량과 기능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결국 서사적 설득력이 충분히 쌓이지 않은 데다 분량도 많지 않다 보니 보안팀 요원에서 점차 인간적인 선택의 기로에 서야 하는 희조의 과정을 따라가기에 벅차다. 한마디로 이해는 할 수 있으나 쉽게 납득하기는 어렵다.
또한 인공지능과 인류의 미래라는 핵심 설정은 아이디어 차원에 머문다. 조각난 개념들이 나열될 뿐, 하나의 서사로 유기적으로 엮이지 않는다. 보는 내내 물음표를 속으로 삼키며 작품을 따라가게 된다.
연출은 분명 자신감이 넘친다. VFX로 구현된 물의 움직임, 공간의 폐쇄성, 카메라의 시선은 돈과 열정을 들인 흔적을 숨기지 않는다. 문제는 그 자신감이 각본과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는 점이다. 하고 싶은 연출과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따로 존재하고, 그 사이를 잇는 이음새는 힘이 떨어진다.
이처럼 '대홍수'는 인간의 감정, 재난의 상징성, SF적 상상력까지 모두 담으려는 욕심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욕심을 정리해 줄 서사는 부족하다. 끼워 맞추면 이해는 되지만, 끝까지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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