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FACT] "버티기만 하면 됐는데"... '씁쓸함' 속 고개 숙인 한동훈 (영상)


3일 한동훈, '비상계엄 1년' 기자회견
국회 찾아 "계엄 예방 못한 점 사과"

[더팩트|국회=김민지 기자] "버티기만 하면 새로운 국면이 열리는 것이었는데… 비상계엄이 모든 것을 망쳤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1년 전 비상계엄 선포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단호한 어조였지만 말끝에는 씁쓸함이 묻어났다.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앞 쪽문. 12·3 비상계엄 사태 1년을 맞아 한 전 대표는 기자회견을 갖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비상계엄 전 민주당의 폭거는 극에 달하고 있었다"며 "저열한 정치 논리로 22번의 탄핵을 밀어붙여 국정을 마비시켰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말 안타까운 건 이재명 (당시) 대표의 판결이 예정돼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버텨내기만 하면 새로운 국면이 열릴 상황이었다는 점"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비상계엄이 모든 것을 망쳤다"고 강조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계엄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국회=김민지 기자

한 전 대표 측 설명에 따르면 이 쪽문은 그가 1년 전 계엄 해제를 위해 국민의힘 동료 의원 및 시민과 함께 국회로 진입했던 곳이다.

영하권의 추위에도 현장은 일찍부터 지지자들로 붐볐다. 좁은 출입구 주변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고, 일부는 사람들 너머로 보겠다며 나무 위에 올라가기도 했다. 현장에는 송석준·배현진·고동진·박정훈·정성국·정연욱·진종오·안상훈 의원 등 이른바 '친한계' 의원들도 자리했다.

오후 1시 23분. 검은 코트에 회색 목도리를 두른 한 전 대표가 모습을 드러내자 지지자들은 "한동훈!"을 외치며 환호했다.

짧게 인사한 뒤 마이크 앞에 선 그는 "비상계엄을 막은 건 피땀으로 이룩한 자유민주주의 시스템과 이를 삶에서 녹여내고 실천해 온 국민들이었다. 당시 여당 대표로서 계엄을 미리 예방하지 못한 점에 대해 다시 한번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 국회=박헌우 기자

이어 앞에 보이는 쪽문을 가리키며 "그날 밤 국민의힘은 저 좁은 문을 통해 어렵사리 국회에 들어가 계엄 해제에 앞장섰다"면서 "국민의힘의 공식 결단과 행동은,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한 비상계엄일지라도 앞장서서 막고 단호하게 국민 편에 서겠다는 것이었음을 기억해달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전 대표는 비상계엄 이후의 1년을 '후퇴의 시간'으로 규정했다. 그는 "그날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민주주의가 온전하게 회복됐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더 나빠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 특활비는 부활했고, 대통령실 앞 집회는 더 어려워졌고, 실세 측근 비서관은 불러도 국회에 안 나오고 약속했던 특별감찰관은 감감무소식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유죄 판결을 막으려 사법부를 겁박하고 인사 개입하고 검찰을 폐지하고 있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으로 나라를 망쳤다면 이 대통령은 딱 계엄만 빼고 나쁜 짓을 다 해서 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 퇴행이 아니라 미래로 가자. 과거 잘못 때문에 미래 희망을 포기할 수 없다"며 "우리가 내일로 나아가려면 과거의 잘못된 사슬은 과감하게 끊어내야 한다. 반성할 수 있는 용기만이 그 전진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발언을 마친 뒤 한 전 대표는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한 전 대표는 '오늘 당에서 사과라고 보기 어려운 메시지가 나왔다'는 지적에 "사과받을 분은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이다. 민주당은 이 상황을 만들어 사과해야 할 사람들"이라며 "국민들이 그만 됐다고 할 때까지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당 당무감사위원회가 한 전 대표의 가족이 연루된 의혹이 제기된 당원게시판 사건 조사에 착수한 것에 대해선 "미래로 가야 할 대단히 중요한 시기다. 퇴행이 아니라 미래로 가야 한다"고 말을 아꼈다.

내년 6·3 지방선거에서의 역할을 기대해도 되느냐는 질문에는 "저는 국민의힘 정치인이고, 국민의힘이 국민의 사랑을 받고 국민의 도구와 힘이 되기 위해 존재하고 일하는 사람"이라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답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 후 이동하며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국회=김민지 기자

질문이 마무리되자 그는 지지자들에게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하며 이동했다. 갑작스레 몰린 인파에 현장은 잠시 아수라장이 됐고, 경호 인력과 수행진이 길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차량에 오른 뒤에도 한 전 대표는 창문을 내려 마지막까지 손을 흔들었고, 지지자들은 그의 차량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환호를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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