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상>] 이영현 변호사 "北서 온 아이들, 학교 적응 어려워…관심 쏟아야"


[탈북민 목소리①] 남북 제도·정서 격차 이중 부담
"韓 거주 탈북민은 '먼저 온 통일'…정착 응원해주길"

더팩트는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이래에서 이영현 변호사를 만나 탈북민 교육·정착 문제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었다. /서초=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서초=정소영 기자] 지난해 기준 한국에 살고 있는 북한이탈주민(탈북민) 수는 3만 4314명(여성 2만 4746명·남성 9568명)이다. 숫자만 보면 한국 전체 인구 수의 0.06%에 불과하지만 한반도 통일을 고려하면 이미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탈북민 존재의 의미는 가볍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이들은 제도·언어·문화적 격차를 한 번에 떠안는다. 이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탈북한 뒤 제3국 등에 머무느라 제때 받아야 할 학습을 못 받고, 한국에 와 뒤늦게 교실에 들어가도 진도를 따라가기 벅차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정부와 민간이 탈북민을 위해 대안·특성화 학교로 땜질에 나섰지만, '공존의 시간'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에 노력하며 살고 싶다는 탈북민 출신 이영현 변호사는 "한국과 북한에서의 생활이 매우 달라 처음 한국에 오면 교육과정을 이수하며 사는 게 쉽지 않다"며 "한국 사회가 중고등학생이든 대학생이든 한국에서 교육 받는 탈북민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팩트>는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이래에서 이 변호사를 만나 탈북민 교육·정착 문제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었다.

다음은 이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국내 1호 탈북민 변호사인 이영현 법무법인 이래 변호사는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북한 주민의 인권을 개선하고 기본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법조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서초=이새롬 기자

-한국에 오게 된 과정을 소개해달라.

한국에 온 지 23년이 됐다. 고향은 북한 함흥이다. 1990년대 중·후반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고, 많은 사람들이 아사했는데 우리 가족 중에도 할머니와 삼촌이 굶어서 돌아가셨다. '더는 이곳에서 버틸 수 없겠다'고 생각하고 1997년 6월, 외삼촌을 따라 탈북을 강행했다. 두만강을 건더던 도중 외삼촌은 급류에 휩쓸려 잘못되시고, 혼자 중국에 체류하게 됐다. 이후 중국에서 약 5년을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지내다 2002년에 한국에 왔다. 한국에 도착했을 때가 19살이었는데, 그때부터 뒤늦게 고등학교 과정을 다시 밟았고 대학·로스쿨을 거쳐 현재는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변호사를 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

고등학교 3학년 당시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라는 고민이 생겼다. 선생님들과 상담도 많이 했고 여러 직업군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막상 '내가 확실히 하고 싶다'고 느껴지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북한 인권 변호사는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온 만큼 북한 주민들을 위해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인권문제는 법과 제도의 문제이고 법률전문가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결국 북한 주민의 인권을 개선하고 기본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법조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시엔 한국에 사법고시가 존재하던 때라 현실과 꿈 사이의 간극이 매우 컸지만, 그럼에도 '이 길을 가야 한다'는 마음이 확고했다. 많은 시련과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렇게 법대,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시험까지 합격하고 탈북민으로는 최초로 대한민국 변호사가 됐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변호사가 됐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탈북민들이 겪는 교육 환경의 현실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사실 10대 아이들이 한국에 와서 적응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 완전히 다른 제도와 교육 시스템에서 살다 오기 때문에 일반 학교에 들어가면 학업을 거의 따라가지 못하고 학교 문화에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또 탈북 과정에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북한에서 생계를 위해 학교를 오래 못 다닌 경우도 많고, 중국이나 제3국에서 오랜 기간 불안정한 신분으로 지내다 보니 받아야 할 교육을 제때 못 받는다. 또래에 비해 학업 공백이 길 수밖에 없다. 나만 해도 19살에 한국 와서 나보다 세 살 어린 학생들과 함께 고등학교에서 공부했지만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또 북한에서 왔다는 것 때문에 또래 아이들이 편견을 갖거나 차가운 시선을 바라보는 경우도 많다. 그로 인한 심리·정서적 고통 등의 어려움이 있다. 학업적인 어려움에 이어 학교문화와 정서가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북한에서 온 학생들을 마치 동물원 원숭이 보듯이 대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정부가 약 20여 년 전 탈북학생들을 위한 ‘한겨례 중·고등학교’를 만들었다. 탈북민 학생들이 한국 학교에서 겪는 학업·정서적 어려움을 고려한 것이다. 정서적·학업적 맞춤 케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에서 또래 학생들과 부딪치며 적응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사회에 나와야 하는데 서로 융화될 시간이 부족해지는 것이다.

이뿐 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말한 건 24세 이하의 탈북민 청소년·청년의 사례인데 24세가 넘었지만 제대로 중·고등교육을 못 받은 상태로 한국에 도착하는 이들도 많다. 나이 때문에 일반 정규 과정의 중·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없다. 이런 분들은 주로 탈북민들을 위한 인가를 받은 교육기관에서 공부하거나 비인가 교육시설에서 검정고시를 통과해 대학교에 입학하는데,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탈북민 특별 전형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만 학업을 따라가지 못해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별히 학교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관심 가지고 도와주면 상당히 안정적으로 적응하고 좋은 성적으로 학업을 마치고 졸업하기도 한다.

탈북 학생들은 너무 다른 교육 및 생활환경 속에서 어렵게 살아왔다. 학업 공백, 탈북과정에서 겪는 트라우마, 정체성의 혼란, 사회적 편견 등 많은 문제들이 겹쳐 있는 만큼 학교와 사회가 장기적 관점에서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착 이후,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한국에 오기 전에는 좋은 것만 다 보였다. 화려하고, 경제적으로 굉장히 부유하고, 사람들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사는 것 같고, 불행하고 어려운 사람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한국사회에서 20년 넘게 살다보니 처음에 몰랐던 부분들이 많이 보게 됐다. 부정적인 면도 있고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극심한 사회적 갈등(남녀·세대 갈등 등), 정치적 양극화, 다양한 불의와 부조리의 모습들도 있다. 또 한민족의 통일문제, 북한주민과 북한인권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모습들을 보며 안타깝기도 했다. 반면 처음에 몰랐던 문제들, 예를 들면 높은 교육열, 뛰어난 IT·디지철 기술력, 세계를 선도하는 K-POP 등 K문화, 굳건한 민주주의 체제 등은 매우 긍정적인 면들이다.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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