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정소영 기자] 중일 갈등 속 중국이 미국과의 외교 채널을 연이어 가동하며 일본을 압박하는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한 직후,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가 주중 미국 대사와 접촉에 나선 것을 두고 일본을 고립시키려는 셈법을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26일 논평을 통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정부가 대만 문제에 대해 의도적으로 도발하면서 지역 평화의 두드러진 위험 요소가 됐다"며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이 위험한 이유는 중국의 핵심 이익에 직접적인 충격을 줄 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국제 질서의 기초를 흔들고 지역 안정에 막대한 불확실성을 던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일본 내 일각에선 미국을 지지한다고 해서 중국에 대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일본이 대만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미국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일본 우익 세력이 도전하는 것은 14억이 넘는 중국 국민의 확고한 국가 주권 및 영토 완성 의지뿐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 미국을 포함한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이 공동으로 구축하고 유지한 전후 국제질서"라고 덧붙였다.
환구시보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통화를 언급하며 "이번 통화는 중미 간 핵심 원칙 문제에 대한 소통과 합의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고 어떤 나라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통해 지역 안정을 위협할 수 없다"며 "일본이 전후 국제질서에 도전하려 하는 것은 출구가 없고 대만 문제에 개입해 이른바 ‘전략적 돌파구’를 이룰 가능성은 더욱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 24일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으로 격화되고 있는 중일 갈등에 대해 논의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만의 중국 복귀는 전후 국제질서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라며 "중국과 미국은 과거에 파시즘과 군국주의에 함께 맞섰고, 현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 성과를 공동으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은 대만 문제가 중국에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은 보도했다.
지난 25일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통화 직후엔 미중 고위급 접촉이 이뤄졌다. 류하이싱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데이비드 퍼듀 주중 미국 대사를 접견해 "양국 관계의 안정적이고 건강하며 지속 가능한 발전을 촉진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중국의 행보에 대해 미중 관계 안정 기조를 의식적으로 부각시키며 일본을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중 간 통화 내용을 보면) 중국이 대놓고 ‘일본 편에 서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견제에 진지하지 않고 ‘중국이 크면 안 돼’라는 생각보다 ‘서로 신경쓰지 말자’ 주의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달 7일 대만 유사시 개입 의사를 밝힌 뒤 중국의 전방위적 외교 공세에도 발언 철회는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일본 내 다카이치 총리의 지지율은 70%를 넘겼다.
다만 일각에선 일본이 불안한 상황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카이치 총리는 25일 트럼프 대통령과 별도 통화를 했지만, 중일 갈등을 촉발한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과 관련해 양측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이 공개 지지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일본 입장에선 경계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다카이치 총리는 미국의 확고한 지지 신호를 기대했을 텐데 내년 4월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과 시 주석의 미국 국빈 방문 추진이 언급돼 전략적으로 당혹스러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중국 행보에 대해선 "일본이 중국의 역린을 건드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일본 길들이기’에 들어간 것 같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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