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정인지 기자] 조기 출근과 야근을 반복하고 공휴일에도 회사 임원과 통화했던 근로자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진현섭 부장판사)는 사망한 60대 근로자 A 씨의 자녀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A 씨는 지난 2020년부터 의료가공업체 B 사에서 단추 위치 표시, 실밥 제거, 가격택 부착, 포장, 다리미질 등 업무를 맡았다. 지난 2023년 6월26일 오전 6시30분 출근해 근무하던 중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A 씨는 약 한 달간 치료를 받던 끝에 뇌내출혈로 사망했다.
유족들은 A 씨 사망의 원인이 과중한 업무에 있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례비 지급을 청구했다. 반면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 질병 사이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부지급 결정을 내렸다. 공단은 사업주 진술 등을 토대로 A 씨의 발병 전 12주간 주당 평균 업무 시간을 51시간30분으로 산정했다.
유족들은 실제 근무시간은 더 길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A 씨는 주 6일 근무했고 공휴일에도 출근했으며, 오전 6~7시 전후 근무를 시작해 오후 7시가 지난 뒤 퇴근하는 경우가 잦았다"고 했다.
법원은 통화기록 등을 토대로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 씨는 주 6일을 근무했을 뿐 아니라 수시로 8시30분 이전 조기 출근하거나 평일 19시 또는 토요일 17시 이후인 21시경까지 야근을 반복했다"며 "발병 전 12주간 1주 평균 업무시간은 52시간을 초과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회사 임원과 오전 7시 이전 또는 오후 7~9시께 여러 차례 통화한 기록이 있었고, 공휴일인 석가탄신일에도 오전 9시 이전 통화했다"고 판단했다. 발병 당일 오전 6시30분께 출근해 업무를 시작한 점도 과도한 업무로 인정했다.
A 씨는 사망 전 뇌혈관 질환 치료 이력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뇌내출혈 발생 또는 악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소견을 인정할 수 있다"며 "법리에 비춰보면 업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업무상 재해를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으로 정하고, 발병 전 12주 동안 주당 평균 근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면 업무와 질병 사이 관련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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