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혁신도시 정책은 지방 균형발전의 매력적인 청사진이었습니다. 공공기관 이전으로 인구가 늘고 지역에 활력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은 컸습니다. 실제로 혁신도시의 평균 연령(34.7세)은 대한민국 평균(43.3세)보다 젊고, 아동 인구 비율이 두 배에 달하는 등 일부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혁신도시는 '국가균형발전의 상징' 대신 '반쪽 성공, 반쪽 실패'로 불립니다. 공공기관 직원들의 실거주율이 40%대에 불과하고, 낮에만 붐비고 저녁과 주말에는 텅 비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교육, 병원 등 정주 환경 부족으로 가족 동반 이주가 어렵습니다. 나은 사례로 평가받는 세종시도 민간 일자리가 부족해 산업 생태계가 작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수, 중앙 지원 한계 넘어야 할 때
현재 여수는 석유화학 산업 침체로 힘든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중앙정부는 여수를 산업 및 고용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하고, 묘도 수소산업 클러스터, 백리섬섬길 전국 최초 관광도로 지정 등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지원 의지는 분명하지만, 여수의 위기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혁신도시가 보여준 가장 큰 교훈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지원만으로는 지역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공공기관을 유치하면 일시적으로 인구가 늘고 건물이 들어서지만, 그것이 지역의 자생력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중앙의 지원은 필요하지만, 그 지원을 받아 무엇을 어떻게 만들고 키워나갈 것인지는 결국 지역 스스로의 몫이고 역량이기 때문입니다.
여수는 지금 전통적인 혁신도시 모델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여수만의 독자적 성장 경로를 만들 것인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다행히 여수는 독자적 발전을 위한 자원을 이미 갖추고 있습니다. 여수국가산단이라는 세계적인 석유화학 클러스터를 보유하고 있고, '여순광 지역'이라는 산업·항만·관광 삼각 축의 중심이며, 고흥과 남해를 잇는 세계적인 수준의 관광 인프라를 보유한 한반도 남부 중심지입니다.
해양의 도시 여수는 블루카본, 해양바이오, 해양관광, 해양 디지털 기술 등 미래 성장의 핵심인 해양 기반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기존 혁신도시가 이전기관에 의존하는 모델이었다면, 여수는 해양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주체적 성장 모델'을 시도할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주어진 도시에서 만들어가는 도시로
정부의 위기 대응 및 관광 육성 지원 의지가 분명한 지금, 여수는 주체적으로 비전과 발전 방향을 그려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여수산단의 저탄소 전환을 해양환경 개선과 연계해 '에너지·환경 혁신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남해안 해조류 양식과 연결한 '블루카본 연구 허브'를 조성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내년 섬박람회와 COP33 유치를 통해 '해양 기후기술 특화도시'로 발전을 모색하여야 합니다.
여기에 시민이 살고 싶은 정주 환경을 조성하고, 시민이 먼저 즐길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도시 개조' 노력이 더해진다면, 여수는 기존 혁신도시가 실패했던 이전기관 중심 모델이 아니라, 주체적인 비전 기반 성장 모델의 성공 사례가 될 것입니다.
혁신도시의 한계가 명확해진 지금, 여수는 과거처럼 '주어진 도시'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도시'가 될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여수가 이미 가진 산업, 관광, 해양환경이라는 고유한 자원의 가치를 재구성하는 일, 그것이 위기를 돌파하고 새로운 성장을 시작하는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 본 칼럼 내용은 필자의 주관적 시각으로 더팩트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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