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삼성전자의 인수합병(M&A) 소식이 잇달아 전해지고 있다. 그간 소극적이었던 대형 M&A에 속도가 붙으면서 삼성전자의 새 먹거리 윤곽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유럽 최대 공조기기 업체인 독일 플랙트 지분 100%를 15억유로(약 2조5000억원)에 인수하는 절차를 마무리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플랙트는 데이터센터, 대형 상업시설, 병원 등을 위한 중앙공조, 정밀 냉각 솔루션을 공급하는 냉난방공조(HVAC) 업체다. 글로벌 10여개의 생산거점과 함께 유럽·미주·중동·아시아에 판매·서비스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삼성전자가 플랙트를 인수한 것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급증으로 확대되고 있는 중앙공조 시장에 본격 진출하겠다는 의지다.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른 공조 사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낙점, 본격적으로 사업 확대에 나서는 것이다. 두 회사 제품·서비스를 결합해 새로운 기회도 적극 모색하는 전략적인 행보이기도 하다.
노태문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 직무대행 사장은 "플랙트 인수를 통해 글로벌 공조 시장을 주도하며 고객들에게 혁신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라며 "플랙트의 기술력과 삼성전자의 AI 플랫폼을 결합해 글로벌 공조 시장을 선도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플랙트 인수는 8년 만에 이뤄진 조 단위 M&A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새 먹거리로 낙점한 미래 사업의 성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빅딜'에 재차 시동을 걸었다는 뜻이다. 회사는 지난해 5월 미국 공조 업체 레녹스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관련 시장에 눈독을 들여 왔다. 데이터센터 공조 시장을 놓고 보면 2030년까지 441억달러(약 62조원)로 연평균 18% 성장이 전망된다.
플랙트와 같이 삼성전자가 최근 인수한 기업들을 살펴보면, 회사가 중점적으로 보고 있는 새 먹거리를 확인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미래 성장 산업 위주의 인수·투자에 적극 나서겠다고 공식화한 상태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말 로봇 전문기업인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지분을 14.7%에서 35%로 확대해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이를 통해 휴머노이드 등 미래 로봇 개발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같은 해 지식 그래프 특화 영국 스타트업인 옥스퍼드 시멘틱 테크놀로지스 인수 계약 소식도 전했다. 정교하고 개인화된 AI를 구현하는 핵심 기술 중 하나인 지식 그래프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자회사 하만이 지난 5월 약 5000억원에 미국 마시모사 오디오 사업부를 인수한 것도 미래를 위한 결정이다. 이번 인수를 통해 세계적인 오디오 명가로서 입지를 확고히 하고 컨슈머 오디오부터 카오디오까지 사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헬스케어 영역도 삼성전자가 공을 들이고 있는 미래 먹거리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난해 삼성전자 자회사 삼성메디슨이 초음파 진단 리포팅 기술을 지닌 프랑스 스타트업 소니오를 인수, 우수 AI 개발 인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의료용 AI 솔루션의 개선을 꾀했다. 올해 들어서는 삼성전자가 지난 7월 폭넓은 헬스케어 네트워크와 전문성을 갖춘 미국 젤스를 인수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삼성물산과 함께 증상 없는 사람의 혈액 채취만으로 암을 조기 진단하는 미국 생명공학 기업 그레일에 약 160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미래 성장 산업에 대한 삼성전자의 적극적인 인수·투자 행보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시각이 주를 이룬다. 새 먹거리를 둘러싼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중요한 시기인 데다, 수년간 중요 의사 결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사법리스크가 해소됐기 때문이다. 현재 이재용 회장의 발자국은 바이오, 전장 등 신사업 위주로 찍히고 있는 추세다. 이 회장은 다음 주 한국을 방문하는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회장을 만나 미래 먹거리인 전장 분야의 협력을 논의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은 전략적 M&A 및 대형 투자가 연중 내내 검토된다고 볼 수 있다"며 "이는 미래를 적극적으로 준비하겠다는 의지"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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