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의종 기자] 글로벌 방산 공급망 재편 속 국내 조선업체 존재감이 커진 가운데 KDDX(한국형 차기 구축함)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국내 대표 업체 간 신경전이 지속돼 업계 안팎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결정권을 가진 방위사업청(방사청)이 중심을 잡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오는 상황에서 '상생안'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는 모양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방사청은 오는 14일 방위사업기획관리 분과위원회(분과위)를 열고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 방식을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분과위 안건은 국방부 장관이 참여한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 의결 절차를 거쳐 최종 결정된다.
KDDX 개념설계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기본설계는 현대중공업(현 HD현대중공업)이 수행했다. 이제 상세설계, 초도함 및 후속함 건조 등이 남은 상황에서 양측은 현대중공업 직원이 KDDX 개념설계 등을 탈취한 사건을 계기로 충돌하고 있다. 해당 사건으로 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한화 품에 안기며 대우조선해양에서 재출범한 한화오션은 지난해 현대중공업 직원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사건에 "임원도 개입됐다"며 고발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에 현대중공업 직원이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하며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가까스로 양측은 서로 고소·고발을 취하했다.
8조원 규모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을 놓고 뚜렷한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서 양측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수의계약을 통해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을 맡아야 한다는 HD현대중공업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사건이 불거진 업체가 맡아서는 안 되며, 경쟁입찰로서 사업자를 선정할 필요가 있다는 한화오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방사청은 올해 4차례 분과위에서 수의계약 방식을 중심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민간위원은 부정 입장을 냈다. 지난 3월 민간위원은 "복수 방산업체가 존재하는데,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업체와 수의계약은 불가하다"며 "상생 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했다.
지난 4월에도 결론이 나오지 않자, 분과위는 국방부 주관 KDDX 사업 점검과 전력화 지연 해소 방안 마련, 방사청 제도적 미비점 개선 방안 마련 등을 마련한 뒤 방식을 결정하기로 했다. 이후 6월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자 사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오는 14일에도 결론을 내지 못하면 연내 사업 착수가 어렵다는 분석이 있다. 정치권도 전력화 지연에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2일 서울 ADEX 2025에서 "국방위원회 의원은 상생 쪽으로 보고 있다"라고 했다.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7일 방사청 국정감사에서 석종건 방위사업청장에게 "계속해서 수의계약을 주장한다면 세계 시장에서 우리 국가와 방사청 방산 관리 신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백선희 조국혁신당 의원도 "상생 협력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라고 했다.
상생안에 힘이 실리는 배경은 글로벌 방산 공급망 재편 속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협력 필요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 원팀은 최대 60조원 규모 캐나다 차기 잠수함 도입 사업 입찰에 참여해 독일 TKMS와 숏리스트에 선정된 상태이기도 하다.
핵추진잠수함 사업도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합심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HD현대 조선 부문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은 최근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핵추진잠수함은 한 조선소 기술적 역량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방사청이 갈등을 봉합하지 않고 오히려 키운다는 비판도 나온다. HD현대중공업 보안감점 연장 논란을 자초하면서 갈등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당초 방사청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사건 보안감점 적용 기간을 이달이라고 밝혔다가, 갑자기 내년으로 연장했다.
이에 대해 방사청 관계자는 "보안감점과 관련해 법적인 부분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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