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의 월미도에서] AI '도원결의' 이끈 APEC 젠슨황과 치맥 '깐부' 회동


경주선언…새 성장동력 '문화창조산업'도 채택
2025년 배경 '그녀' 사만다…AI 기대·우려 혼재

이재명 대통령이 1일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 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더팩트ㅣ인천=김형수 선임기자] 천년 고도(古都) 서라벌, 경주에서 열린 2025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이 지난 1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1개 회원국은 만장일치로 '경주 선언'을 채택하고 인공지능(AI) 협력, 인구구조 변화 대응에 이어 처음으로 문화창조산업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명문화했다. APEC을 계기로 열린 한미, 미중, 한일,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동아시아와 세계의 경제, 안보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불안정성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양보 없는 무역전쟁으로 패권에 나섰던 미중도 일단, 휴식 모드를 선택해 글로벌 경제의 안정을 기대하게 됐다.

안갯속에 갇혔던 미국과의 관세협상이 풀리고, 이재명 대통령은 핵연료 추진 잠수함 도입을 대담하게 제의해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 입장을 얻어냈다. 또 중국과 경제, 환경, 보건, 범죄 대응 등 분야에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와의 첫 만남을 가졌다. K-컬처가 수놓은 경주 APEC은 동아시아 주요 국가 간 교류와 회동을 주도한 의장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디지털 헤리티지로 천년 신라가 되살아났다. 몽골전쟁에서 소실된 황룡사지와 9층목탑을 비롯한 석굴암, 성덕대왕신종(에밀레 종)의 신비가 재현됐다. BTS RM이 굿즈로 자랑한 반가사유상의 미소처럼 K-헤리티지의 성공 가능성을 선보이는 기회가 됐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황금의 나라 신라의 외교와 권력의 상징이었던 천마총 금관 왕관 모형을 선물해 취향을 저격했다. 시진핑 주석에게 본비자 나무로 제작한 바둑판을 증정하고, 다카이치 총리에게는 김과 화장품을 선물로 전달했다. 각국 정상과 나눈 외교 선물에 쏟아진 의미와 해석, 경쟁도 치열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이 선호하고, APEC 회원국 대표단에게도 제공된 경주 '황남빵'의 인기가 치솟았다.

특히 APEC 기간 대중적인 관심과 인기는 젠슨황 엔비디아 CEO의 '깐부' 행보에 집중됐다. 황 CEO는 엔비디아의 14조 원 규모의 GPU(그래픽처리장치) 26만개를 삼성전자·SK그룹·현대차그룹·네이버클라우드와 공공부문에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이 거대 'AI 팩토리'를 구축해 세계 AI 허브로서 미래 글로벌 경제를 선도하게 됐다는 의미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지난 10월 30일 서울 강남구 깐부치킨 삼성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함께 치맥 회동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예원 기자

지난달 30일 젠슨황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치킨집 '깐부 회동'으로 돈독한 AI동맹 생태계의 출범을 알렸다. '소맥 러브샷'으로 다진 시대를 뛰어넘은 디지털 도원결의로 비유된다. 이 자리에서 황 CEO는 이·정 회장에게 일본 산토리그룹이 생산한 700만원 상당의 위스키 '하쿠슈 25년'을 선물하고 'DGX 스파크' AI 슈퍼컴퓨터도 건넸다. 다음날 최태원 SK 회장에게도 위스키 등이 전달된 것으로 알려진다.

'깐부'는 이른바 절친, 베프, 단짝, 짝꿍, 동반자 등을 의미하는 속어다. 어린 시절 딱지·구슬치기하면서 친한 친구와 한 팀이 되면 '깐부 먹었다'고 으스대던 기억도 있다. AI시대를 열면서 존경하고 사랑하며 삶을 공유하는 진정한 깐부의 의미는 무엇일까? 정의롭고 도덕적 가치를 초월할 정도의 탁월한 품성을 나누는 친구간의 유대겠지만 우리 사회가 현대화 될수록 인간관계는 소외되고 있다. 오히려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는 착각 속에서 AI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시대가 됐다.

지난 2013년 개봉한 SF 멜로 영화 '그녀(Her)'는 과학기술이 발전한 2025년을 배경으로 인공지능의 세계를 그렸다. AI 운영체제가 만든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테오도르'를 통해 인간의 가치와 윤리, 정체성과 인간다움을 다시 한 번 숙고하게 된다. 과학 발전은 AI의 신화를 계속 이어 갈 것이지만 인간의 마음과 의식, 자아를 지닌 사만다는 실재할 수 없다. 고도화된 과학기술로 AI가 인간과 유사하게 작동될 수는 있겠으나 미생물에 불과한 인간생활의 도구일 뿐이다.

목소리만 있는 '그녀 사만다'는 641명을 사랑했다고 실토한다. 이혼한 아내 '캐서린'과는 달리 인공지능 사만다가 인간을 사랑할 수 없다는 방증이다. 서로의 인간적 관계로 맺어진 치맥 회동의 깐부들이 혁신해 나갈 미래사회의 AI도 기계라는 진실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AI와 인간을 구별하는 경계선은 온라인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아닌 진정한 삶의 교류로써 사랑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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