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병욱 기자] "라이벌이 사라진 세렝게티는 더 이상 세렝게티가 아니다. 거기엔 긴장감 대신 '무서운 교만'이 싹튼다. (중략) 교만은 변기 속에 버려야 한다."
세면기, 변기, 욕조 등을 만드는 일본 위생 도기업체 '토토(TOTO)'의 초대 사장 오쿠라 가즈치카(1875~1955년)의 말이다. 오쿠라 가즈치카는 생전, 사업에서 라이벌이 없어지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고 한다.
1904년 창립한 '일본도기합명회사'가 모태인 토토는 1917년 '도요도기(東洋陶器)'라는 이름으로 창업해 1971년 '토토기기(東陶機器)'로 사명을 변경했고, 현재 쓰고 있는 'TOTO'라는 로고는 1969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토토는 1990년대 초 일본 부동산 버블 붕괴,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여러 차례 고비를 넘기면서 결국 글로벌 시장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이는 '교만을 변기 속에 버리라'는 초대 사장의 말을 직원들이 실천했기에 가능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기업의 경영자나 조직의 리더들에게는 무엇이 도움이 될까.
수많은 정보가 담긴 보고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조언하는 멘토, 미래 가치를 선별할 수 있는 선구안 등을 꼽을 수 있겠다.
그런데 때론 '천금 같은 말 한마디(一言千金)'가 빠른 판단과 적확한 통찰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학자들의 명언과 이에 대한 해석은 실패와 좌절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용기와 지혜가 자리잡게 해준다.
거듭된 위기 속에서도 자신만의 원칙과 언어로 회사를 이끈 일본 최고경영자(CEO) 42명의 경영 어록을 모은 책 '일언천금-시간이 흐를수록 빛이 나는 위대한 CEO들의 경영 어록(시크릿하우스)'이 출간됐다.
책 '일언천금'은 단순한 명언집이 아니다. 짧은 문장 뒤에는 수십 년의 시행착오, 혹독한 단련, 그리고 위기 속에서 길어 올린 생존의 철학이 숨어 있다.
일본 CEO들의 어록은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현장에서 길어 올린 압축된 생존 전략'이다. 책은 이런 언어를 단순히 인용하지 않고, 그 말이 태어난 배경과 현장을 함께 따라가며 풀어낸다.
저자는 이들의 말을 '어록의 저수지에서 길어 올린 마중물'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시대를 바꾼 경영자들의 '천금 같은 말' 한 문장 한 문장을 통해서 리더십의 본질을 추적했다.
전략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지만 어록은 시들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빛이 난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영감을 던지며, 행동으로 이어지게 한다. 마침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는 것이다.
선배 경영자 중 자신의 경험을 농축된 어록으로 정리해 후배 경영자들의 자산이 되도록 애쓴 기업인 중 대표적인 인물이 '기업 회생의 신'이라 불렸던 교세라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와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았던 파나소닉의 마쓰시타 고노스케이다.
이들은 기업을 경영하면서 말과 삶을 일치시키려 했다. 그들의 어록은 현장에서의 고뇌, 시대의 풍랑에서 나온 '압축된 생존 전략'이었다.
"손이 베일 듯한 물건을 만들어라"라는 이나모리 가즈오의 말은 허투루 나온 것이 아니다. 그는 평범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것을 죄악처럼 여겼다.
'손이 베일 듯한 물건'은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퍼플 카우(purplecow)'쯤 될 것이다.
이나모리의 신념은 교세라의 DNA가 되었고, 성장과 성공을 이끌었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존경했던 선배 기업가인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피오줌을 눈 적이 없다면 성공한 경영자가 될 수 없다"는 어록을 남겼다.
경영자의 헌신을 '피오줌'이란 극단적 표현으로 설파한 것이다. 그는 가난과 병약함을 딛고 기업을 일으킨 자기 경험이 곧 '피오줌의 세월'이었다고 고백했다. 그에게 피오줌은 은유가 아니라 실제 '체험의 언어'였다.
위기를 돌파한 경영자들의 한마디 말은 후배 리더를 다시 깨운다.
경영은 전략이 아니라 언어에서 시작된다. '일언천금'은 바로 그 말의 힘을 복원하려는 책이다.
'고전 덕후' 그리고 산(山) 콘텐츠 크리에이터인 저자 이재우는 일간지에서 20년간 기자로 일했고, 이후 비영리 독립 매체를 거쳐 일본 경제매체 '재팬올'을 창간해 발행인을 맡았다.
2019년엔 일본 애니메이션 '원령공주'의 배경이 된 야쿠시마(가고시마현 세계자연유산) 산악 사진전을 열었다. 또한 유럽 수제 맥주의 역사를 담은 책 '황금빛 기쁨'(공저)을 쓰면서 전국의 맥주 양조장(brewery)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경영 칼럼니스트로서 2022년 7월부터 경제매체 '비즈니스포스트'에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면서 글로벌 경영자들의 전략과 혜안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힘이 있는 어록은 대부분 실패의 골짜기나 고통의 현장에서 태어난다고. 그래서 '피와 땀의 진동'이 느껴진다. 어록은 곧 경영자의 삶 그 자체다. 말이 곧 자산이자 유산이다.
저자는 일본 경영자들의 어록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며 새로운 경영자들에게 영감을 주듯, 오늘의 리더들에게 다시금 "경영의 언어를 새롭게 세우라"고 권한다.
창업자든 중소기업 대표든, 혹은 수십 명의 팀을 이끄는 리더든, 누구나 이 책 속에서 자신의 현재를 비춰볼 한 문장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재우 지음. 출판사 시크릿하우스. 236쪽.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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