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황지향 기자] 포스코가 HMM 인수 검토에 착수하면서 해운업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연내 매각 로드맵 발표를 예고한 가운데 한국해운협회는 "대기업의 해운업 진출은 해운 생태계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며 공식적으로 인수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그룹은 최근 회계법인 삼일PwC와 글로벌 컨설팅사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등과 계약을 맺고 HMM 인수 타당성 검토에 들어갔다. 그룹 내부에서는 철강 원료 및 제품 운송 과정에서의 물류비 절감과 해상 수송망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포스코 관계자는 "HMM의 성장 가능성과 그룹 사업과의 시너지 창출 여부를 폭넓게 검토하는 단계"라며 "인수 참여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HMM은 최근 주주환원 정책 강화를 위해 약 2조1430억원 규모의 공개매수와 자사주 소각을 단행했다. 이번 공개매수에는 8180만주가 응했으며, 최대주주인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가 각각 3506만주, 3472만주를 매도했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의 지분율은 36.02%에서 32.6%로, 해진공은 35.67%에서 32.28%로 낮아졌다. 두 기관의 합산 지분은 약 64.9%에 달한다.
정부는 공적자금 회수를 목표로 HMM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 15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배구조라든지 매각 문제 등과 관련해 시장 불확실성이 있어 불확실성을 제거해 준다는 차원에서 가능하면 해수부가 연내 부산 이전하기 전에 HMM에 대한 지배구조 문제라든지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정부의 행보는 사실상 HMM 민영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안병길 해진공 사장은 "포스코와 공식적으로 접촉한 사실은 없지만, 산업은행과 협의를 통해 매각 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라며 "HMM이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해상 물류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시장에서는 산업은행이 보유한 HMM 지분 32.6%가 우선 매각 대상으로 거론된다. 산은과 해진공의 합산 지분율이 64%를 웃도는 만큼 정부가 해진공의 경영 참여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산은 보유분만 우선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경우 인수자는 산은 지분만 확보해도 사실상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 해운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해운협회는 최근 장인화 포스코 회장에게 HMM 인수 검토 철회를 요구하는 건의서를 제출했다. 협회는 포스코의 해운업 진출이 전문 선사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HMM이 철강산업의 보조 역할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철강 경기가 악화될 경우 HMM 역시 함께 타격을 입어 재정 불안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협회는 또 2022년 4월 한국해운협회와 포스코플로우가 체결한 국적선 수송 확대 노력, 해운법과 공정거래법 준수 및 해운업에 진출하지 않겠다는 업무협약(MOU)의 내용을 이행해줄 것을 요청하며 "앞으로도 해운산업이 철강산업을 비롯한 모든 산업과 국가 경제발전에 지속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도록 서로 상생하는 관계로 나아가자"고 촉구했다.
양창호 해운협회 상근부회장은 "포스코가 제철원료와 철강제품 운송까지 자기화물로 돌릴 경우 시장에서 중소 선사들이 사라질 것"이라며 "이는 해운 생태계 파괴를 넘어 국민경제 전체에 피해를 주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거양해운, 호유해운, 동양상선 등 대기업 해운 자회사들이 잇따라 실패한 전례가 있다"며 "포스코 역시 거양해운을 운영하다 한진해운에 매각하며 큰 손실을 입은 바 있다"고 강조했다.
협회는 해외 사례도 제시했다. 브라질 광산기업 발레사(Vale)가 초대형 벌크선을 대량 발주해 해운업에 진출했지만, 최근 이를 매각하고 사실상 해운업에서 철수한 사례다. 협회는 "전문성이 없는 기업의 해운업 진출은 결국 실패로 귀결된다"고 주장했다.
법적 논란 여지도 있다. 해운법 제24조는 제철원료 등 대량화물의 화주가 사실상 지배하는 법인이 해운업 등록을 신청할 경우, 해양수산부 장관이 정책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들어 등록 여부를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협회는 이 조항을 근거로 포스코의 HMM 인수가 현행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보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HMM은 단순한 수송 기업이 아니라 국가 물류 안보를 담당하는 전략 자산"이라며 "공적자금 회수만을 이유로 매각을 서두르면 산업 경쟁력 전반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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