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저성장도 힘든데…탄소배출권 할당량 감축에 제조업계 비명


기후환경에너지부, 시장 안정화 예비분 탄소배출허용총량 포함
'0%대' 경제성장률에서 규제 강화 정책, 기업 부담 ↑

정부가 내년부터 적용할 탄소배출권 제도 강화 방안을 공개하면서 장기 저성장에 짓눌려온 기업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수산단 전경. /더팩트 DB

[더팩트ㅣ장혜승 기자] 정부가 내년부터 적용할 탄소배출권 제도 강화 방안을 공개하면서 장기 저성장에 짓눌려온 기업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업에 배정된 탄소배출권 할당량이 감소해 이를 구매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부담이 커진 탓이다. 에너지 다소비 업종인 정유, 석유화학, 철강 등 제조업계는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기후환경에너지부가 4차 탄소배출권 할당계획을 내놓은 뒤 탄소배출권 할당량 감축으로 기업들의 부담이 커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탄소배출권 할당제는 정부가 기업별로 온실가스 배출권을 유상 혹은 무상으로 할당해 그 범위 내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도록 하고, 여유분이나 부족분을 다른 업체와 거래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기업이 할당량보다 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여유 배출권을 시장에 팔 수 있고 더 배출했다면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이번 4차 배출권 할당계획에서는 안정화 예비분을 이전 대비 7배 이상인 1억톤으로 대폭 늘렸다. 3차에 걸쳐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했으나 실효성이 없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배출허용총량을 정하고, 그 안에서 기업에게 배출권을 사전 할당해왔다. 3차 기간까지는 배출 허용 총량 이외에 시장 안정화 조치 용도의 예비분을 뒀으나 4차 계획 기간에는 시장안정화 용도의 예비분을 배출 허용 총량에 포함했다. 그만큼 참여 기업들에 할당할 배출권이 줄어들게 된다.

결국 기업에 할당된 배출권이 줄어든 만큼 정유, 석유화학, 철강 등 제조업계는 할당량이 감소해 이를 구매해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업계는 예비분의 급격한 확대에 따른 경쟁력 하락을 우려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개최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제4차 할당계획 토론회'에서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국내 제조업의 생산비용이 크게 증가한 가운데 이번 조치로 배출권 비용까지 추가 부담하게 되면 생산 가동 축소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기업 경쟁력을 고려해 예비분을 적정 수준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기후환경에너지부가 4차 탄소배출권 할당계획을 내놓은 뒤 탄소배출권 할당량 감축으로 기업들의 부담이 커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의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해 질의를 듣고 있다. /박헌우 기자

이 예비분을 발전과 산업 부문에 배정하는 방식을 둘러싸고도 우려가 나온다. 정부 안은 발전과 산업에 각각 1:9 비율로 배정하는 것인데, 배출권 허용 총량(3:7)과 비교하면 산업 부문에 예비분 할당이 과도하다는 의견이다.

산업계는 앞서 예비분이 과도하고, 배분 방식이 산업 부문에 불리하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당초 계획 대비 예비분 수량을 1000만톤 줄이는데 그쳤다.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감축량 활용 방안을 두고도 이견이 나온다. 정부는 감축량 1120만톤을 4차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배출허용총량에 포함할 예정인데 '동해가스전 CCS 실증사업'이 취소되는 등 CCUS 상용화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제조업이 장기 저성장이라는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점도 우려가 크다. 앞서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0.9%로 내다봤다. 일본을 비롯한 주요국 경제는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다는 판단에 성장률이 상향 조정됐지만 한국만 '뒷걸음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0%대의 경제성장률을 어떻게 돌파할지 걱정이 큰 상황에서 정부가 규제 강화 일변도의 정책을 내놔 기업들의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명분만 앞세운 배출권거래제 규제 강화가 우리나라 산업 기반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며, "정부는 형식적인 의견 수렴 절차에서 탈피해 산업 현장의 목소리에 더 귀기울이고, 형평성과 실효성을 고려한 배출권거래제를 수립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zza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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