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1430원을 뛰어넘었다. 달러 강세 흐름이 이어지면서 '심리적 저항선'이 붕괴된 모양새다. 수출 기업들엔 원가 부담이 커지고 수입업체와 소비자들은 원가 부담과 물가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진다.
13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1421.15원)보다 8.85원 오른 1430.0원에서 개장했다. 이는 장중 고가 기준으로 지난 5월 2일(1440.0원)이후 5개월 만에 최고치다.
앞서 환율은 지난 10일 1421.0원에 주간 거래를 마감하고 횡보 양상을 보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대(對)중국 관세 인상을 시사하는 게시물을 올리면서 야간 거래에서 장중 1432.0원까지 뛰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이 미국 제조업을 위협하고 있다"며 "곧 대규모 관세 인상 조치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달러 환율이 1430원을 돌파하면서 외환시장 분위기가 한층 더 민감해졌다. 지난 6~7월까지만 해도 원달러 환율은 1300원대 중반까지 내려갔으나 달러 약세 상황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대를 다시 뚫었다.
글로벌 달러 강세 흐름에 더해 미·중 무역 리스크가 다시 부각되자 원화 약세가 가속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심리적 저항선을 넘은 환율 급등은 단순한 수치 변화가 아니라 향후 시장 흐름 전환의 분기점이 될 여지도 있다.
상승 배경을 보면 미국의 금리 정책과 달러인덱스의 강세가 핵심 축이다. 미국 경제 지표가 예상보다 강하게 나오면 연준의 금리 동결 또는 추가 인상 기대가 커지며 달러 수요가 유지된다. 여기에 미·중 무역 갈등, 특히 관세 확대와 수입 규제 가능성 등 불확실성이 환율을 밀어 올리는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달러인덱스는 12일(현지시간) 저녁 8시 15분 기준 99.03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주요 아시아 통화는 약세를 보이고 있다. 달러·엔 환율은 151엔대, 달러·위안 환율은 7.13위안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달러인덱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1월 109까지 치솟았으나 미 행정부의 관세전쟁 이후 100 아래로 떨어졌다.
APEC 정상회담 불확실성이 높아진 영향도 있다.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와 한·미 통상 협상이 교착 상태를 이어가는 가운데 이달 말 열리는 APEC 회의를 계기로 협상이 진전될 것이라는 기대가 한풀 꺾였다.
환율 상승세로 수출 기업은 수입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제조 원가 부담이 커지게 된다. 수입 물가 상승으로 수입 업체의 경영난이 심화할 수 있고 국내 물가가 반등해 소비 심리가 위축될 우려도 커진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해외여행, 수입 상품, 유학비 등 모든 외화 결제 비용이 눈에 띄게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1000달러 여행 경비를 환전할 때 부담이 수백 원 단위로 커질 수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외국인 자금 유출 가능성에 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코스피가 다시 3000 초반대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다. 환차 손실 우려가 생기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을 떠날 가능성이 있고, 이는 주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금리 스프레드 확대, 국채 금리 상승 등 부작용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정부 셧다운으로 고용지표 발표가 연기된 상황이다. 15일에 나올 예정이었던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오는 24일로 연기됐다. 셧다운 지속 시 이번 주에 예정된 9월 소매 판매·생산자물가지수(PPI)·주간 실업수당 청구 건수(16일), 9월 수출입 가격(17일) 등은 나오지 않을 전망이다. 9월 CPI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연내 추가 금리 인하 여부를 가늠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
시장 전문가들은 당분간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등락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한미 간 관세 협상 불확실성 재료가 잠재해 있지만 당분간 환율의 추가 상승 여부는 달러·엔 환율 흐름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며 "미 연방정부 폐쇄 장기화 분위기 역시 안전자산 리스크를 강화시키면서 달러 강세 재료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연휴기간 몰렸던 수출업체들의 내부 물량이 쏟아지면서 단기적으로 추가 상승 위험을 현실화시킬 만한 동력은 약해진 것으로 보인다"며 "대외 요인들에 의한 추가 상승 리스크는 여전히 열려있다. 1420원대 저항선이 뚫리면 1470원대까지는 저항선없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