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연상호 감독, '얼굴'로 던진 화두


초저예산 2억 원·13회차 촬영으로 완성된 작품
"새로운 레이블 형태로 시스템 구축됐으면 하는 바람"

연상호 감독이 영화 얼굴 개봉을 기념해 <더팩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더팩트|박지윤 기자] 영화 '얼굴'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제작 방식으로 탄생해 묵직한 메시지를 품었다. 이를 완성한 연상호 감독은 작품을 통해 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한국 영화계와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관객들이 꼭 들여다봐야 하는 여러 화두를 던졌다.

연상호 감독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얼굴'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11일부터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그는 "극장 개봉 영화가 되게 오랜만인데 그 맛을 느끼고 있다"며 "한동안 '영화는 스펙터클해야 되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배우들의 연기로 꽉 찬 영화도 몰입감 있고 좋더라"고 말문을 열었다.

작품은 앞을 못 보지만 전각 분야의 장인으로 거듭난 임영규(박정민·권해효 분)와 살아가던 아들 임동환(박정민 분)이 40년간 묻혀 있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다.

얼굴은 앞을 못 보지만 전각 분야의 장인으로 거듭난 임영규와 살아가던 아들 임동환이 40년간 묻혀 있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얼굴'은 연상호 감독이 자신의 초기작 '사이비'의 대본 작업 이후 곧바로 구상한 작품으로, 2018년 자신이 쓰고 그렸던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이날 연 감독은 그동안 마이너해서 투자받지 못했던 이야기를 초저예산인 2억 원을 들여 실사화된 영화의 형태로 대중에게 선보이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하게 들려줬다.

"초등학교 4학년인 제 딸이 유튜브를 많이 보는데 젊은 친구들은 이를 재미로만 생각하면서 받아들이는 폭이 넓더라고요. 영화감독도 콘텐츠 창작자인데 제가 유튜브와 경쟁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함께 대중성을 탈피하지 못하면 영화를 계속 찍기 힘들겠더라고요. 그리고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얼굴'과 비슷한 내용을 재밌게 본 적이 있어요. 한 시간 정도의 분량이었는데 이런 걸 일주일에 하나씩 만드는 제작진과 경쟁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또 들더라고요. 그런데 아내가 한번 해보라고 해서 용기를 냈어요."

연상호 감독은 대중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투자라는 현실적인 벽에 가로막힐 때도 이야기를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가 생각하는 '얼굴'만이 가진 힘과 매력이 무엇이었을지 더욱 궁금해졌다.

"이야기도 생명력을 갖고 있어요. 낭중지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주머니 안을 뚫고 나오는 이야기라는 게 있거든요. 저라는 사람을 통해 세상에 나와 동력을 발산해 내는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얼굴'이 그랬어요. 만화책으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모자란다고 생각했고 이 이야기는 조금 더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은 의지가 느껴졌어요."

연상호 감독은 박정민의 강점은 캐릭터만 보는 게 아닌 작품의 주제가 돋보이기 위해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걸 읽는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그동안 정형화된 영화 제작 방식의 틀에서 벗어난 환경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을 고민해 왔던 연 감독은 오랜 영화 동료 20여 명과 함께 단 2주의 프리프로덕션과 13회차 촬영만으로 '얼굴'을 완성했다. 초저예산인 2억 원과 소수정예로 꾸려진 스태프들, 기존 장편 영화의 4분의 1에 불과한 촬영 기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완성도를 선보이며 한국 영화계에 유의미한 발자취를 남겼다.

"예산이 큰 영화는 늘 시간에 쫓기고 힘든 점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게 없었어요. 마치 영화 동아리가 모인 것처럼 즐기면서 찍었죠. 현장 편집도 없었어요. 연결이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고 일단 넘어갔죠. 나름대로 기동성 있게 촬영했고 배우들도 서로 잘 알다 보니까 괜찮았어요. 인원이 적다 보니까 현장에서 좌충우돌하거나 혼란이 생길 일도 없었죠. 다만 불편한 건 인원이 적다 보니 큰 세팅을 철수할 때 힘들었죠(웃음)."

그러면서 연상호 감독은 이 같은 제작 방식이 계속 되기를 희망했다. 그는 "두 가지 길이 있는데 동창회처럼 한 번씩 모여서 만든다는 개념이고 또 하나는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로 나뉘는 게 아니라 중간 지대에 있는 새로운 레이블의 형태로 시스템이 구축됐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이건 제 의지만으로 되는 건 아니니까 투자·배급사들도 니즈가 생겨야될 것 같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이어 연상호 감독은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자신과 호흡을 맞춘 데 이어 '얼굴'로도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발산한 배우들을 향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1인 2역을 제안한 박정민에 관해 "처음에는 망설였다. 마지막에 권해효와 박정민이 교차되는 장면이 있는데 둘 다 너무 유명하니까 관객들이 이입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런데 아들과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한 사람이 연기한다는 게 영화적으로 좋은 아이디어 같았다"며 "세대에 관한 이야기도 포함됐기에 서로 이해할 듯 못 할 듯 한 두 세대의 연기를 한 명이 하니까 더 콘셉추얼하고 영화적으로 주제와 맞닿았다고 생각한다. 되게 중요한 콘셉트가 됐다"고 강조했다.

연상호 감독은 영화의 개성이 더 존중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그런가 하면 노개런티로 참여하겠다는 박정민의 말을 듣고 어땠냐는 질문에 "'굳이?' 싶었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그를 향한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연 감독은 "박정민은 캐릭터만 보는 게 아닌 작품의 주제가 돋보이기 위해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걸 읽는 배우다. 감독보다도 훨씬 더 명확하게 파고드는 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앞이 보이지 않는 임영규와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정영희 그리고 두 사람의 과거를 따라가는 아들 임동환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여전히 편견 차별 부조리 억압 등이 만연한 현재와 이에 발 딛고 있는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1970년대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거둔 K콘텐츠의 성과에 찬사만 보내는 시선이 있는 등 성취주의를 향한 일방적인 찬사가 있어요. 그 이면에 무언가 존재하고 명과 암이 있다고 생각해요. 임영규라는 성취주의 사나이의 동력이 영화의 핵심적인 부분이고 이로 인해 뒤틀린 내면으로 관객들을 안내하는 영화거든요. 그가 갖고 있는 동력은 우리가 추앙하는 건강한 에너지만은 아닐 수 있다는 점에서 우화의 형태를 띠고 있어요. 우화의 방점은 다른 형태로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고도성장의, 외모지상주의의 우화일 수 있어요. 여러 가지 사회 문제에 다 쓰일 수 있는 게 우화의 강점이죠."

이날 연상호 감독은 2억 원으로 완성도 높은 영화를 완성하기까지의 과정부터 계속해서 위기론이 거론되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 몸 담고 있는 영화 감독으로서 품고 있는 고민까지 여러 생각을 꺼내 앞으로 펼칠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했다.

"영화의 개성이 더 존중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적은 예산이면 리스크가 줄어드니까 더 시도해 볼 수 있겠죠. 이런 영화 저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선택권이 넓어지면서 영화계도 풍성해질 거예요. 큰 이익을 남겨야된다는 생각에 공산품을 만드는 형태로 가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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