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비핵화 종언’, 시급한 ‘한반도 핵균형’[이우탁의 인사이트]


김정은 ‘비핵화 의지 없음’ 천명...‘핵무기 제2사명’으로 노골적인 핵위협
한국인 생존 담보할 장치 시급...핵우산 신뢰못주면 핵무장 여론 고조될 듯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1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마지막 날 단언하건대 우리에게는 비핵화라는 것은 절대로,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밝혀 ‘비핵화 시대의 종언’을 알렸다./조선중앙TV캡처.뉴시스

[더팩트 | 이우탁 칼럼니스트] "단언하건대 우리에게는 '비핵화'라는 것은 절대로, 절대로 있을 수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1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마지막 날에 한 연설은 필자에게는 ‘비핵화 시대의 종언’을 확실하게 알린 조종(弔鐘)으로 들렸다. 돌이켜보면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해온 지난 30여년간의 역사는 네 번의 변곡점이 있었다.

1991년 12월 북한도 합의했던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은 남북한이 함께 ‘핵무기의 개발 포기’는 물론이고 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도 못하게 했다. 그러나 북한은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 보유 여부에 대한 사찰 등을 내세워 끝내 자신들의 핵시설 사찰을 거부했고, 결국 남북한 사이의 협상은 1992년 12월 성과없이 끝났다. 그 뒤 1차 북핵 위기가 발발했다.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약속한 두 번째 합의는 1차 북핵 위기를 봉합했던 1994년 10월 미국과 북한이 서명한 ‘제네바 합의’였다. 북한은 200MW 용량의 경수로 건설과 매년 50만t의 중유 제공을 대가로 영변 핵시설 동결과 해체를 약속했다. 그러나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정부 시절 이른바 ‘고농축우라늄(HEU) 파동’과 함께 밀어닥친 2차 북핵 위기로 인해 제네바 합의 이행은 중단됐다.

이후 북한은 다시 핵개발에 주력했다. 세 번째 기회는 2005년 북핵 6자회담에서 채택된 ‘9.19 공동성명’에서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하기로 약속하면서 찾아왔다. 북한의 핵동결에 대한 대가로 경수로와 중유에다 매년 200만KW의 대북 송전까지 제공하기로 한 합의였다.

9.19 공동성명 이행계획인 2007년 ‘2.13 합의’와 ‘10.3 합의’도 채택됐지만 북한의 거부로 비핵화의 문은 끝내 열리지 못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역사적인 미북 정상회담의 합의문도 기억할 만하다. 싱가포르 합의는 이전의 세 번의 기회가 미국이 세계패권국으로 존재하던 시기에 나온 것과 달리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이 가시회된 이후에 채택된 것이 특징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한 뒤 4개 항의 합의문을 내놓았는데 그 중 3번째에 ‘북한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였다. 하지만 또다시 성과는 없었다. 이듬해인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영변 핵시설 해체를 제시하며 대북 제재 해제를 대가로 얻어내려 했으나 트럼프의 일방적인 협상결렬 선언으로 체면을 구긴채 빈손으로 귀국한 것이다.

그 뒤 미국과의 어떠한 비핵화 협상도 거부한채 핵무력 고도화의 길로 질주한다. 2022년 9월 북한은 핵무기 선제타격을 가능하게 하는 핵보유국법까지 채택했다.

김정은은 21일 연설에서 "핵을 포기시키고 무장해제시킨 다음 미국이 무슨 일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세상이 이미 잘 알고 있다"며 "제재 풀기에 집착하여 적수국들과 그 무엇을 맞바꾸는 것과 같은 협상 따위는 없을 것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핵을 포기한 나라의 생존이 위험해지는 것을 목도한 김정은이다.

역사가 주는 교훈은 간결하다. 과거와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 상당기간 북한이 스스로 비핵화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요원하다는 점이다. ‘핵보유 전략국가’라는 국가 목표를 설정한 김정은의 목표는 미국을 압박해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동시에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달초 톈안먼 열병식이 상징하듯 중국과 러시아의 용인과 지원 속에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존재하는 공간도 확보했다. 이는 곧 한반도 핵균형에 균열을 일으키는 중대한 사변이다. 돌이켜보면 미국이 1950년대 중후반 한국에 주둔한 미군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한 뒤 30여년의 시기동안 한반도 핵균형은 남쪽의 우위였다.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 이후 북한은 비밀리에 핵개발에 주력했고, 30여년 만에 끝내 핵무기를 손에 쥐게 됐다. 이제 한반도 남쪽에 사는 한국인들은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의 위협에 더해 북한의 직접적인 핵위협을 지고 살아야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실제로 김정은은 연설에서 ‘핵무기의 제2사명’ 운운하며 "한국과 주변지역 그의 동맹국들의 군사조직 및 하부구조는 삽시에 붕괴될 것이며 이는 곧 괴멸을 의미한다"고 위협했다. 자칫 무너질수도 있는 한반도 핵균형을 확고히 하는 것은 이제 한국인들에게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이 확고한 핵우산(확장억제) 약속에도 ‘트럼프 변수’를 체감한 한국인들의 불안은 커져만 가고 있다. 미국의 전략자산은 더욱 빈번히, 그리고 더욱 근접해서 한국을 지켜야 하며,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한국도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와 농축 권리를 일본 수준까지는 확보하는 노력을 해야 할 때다. 언제든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구축하는 것은 한국 차원의 핵억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결-축소-비핵화’라는 새로운 접근을 제시해도 북한이 거부하면 ‘동결’ 첫단추도 채우지 못할 것임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자칫 북한의 핵보유만 인정하는 결과를 경계해야 한다. 비핵화의 반대길로 가기로 한 김정은의 의지가 확인된 이상 더 강화된 핵억제 방안을 마련하거나 미군의 전술핵무기가 재배치되는 등 나름의 확실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한국내에서 자체 핵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시나브로 한반도 핵균형을 다시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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