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기획] 자만추? 요즘은 '절만추'...사찰서 짝 찾는 솔로들 '나는 절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나는 SOLO(솔로)' 패러디한 '나는 절로'

'나는 절로, 봉선사' 편, 총 4커플 매칭

조계종 사회복지재단-보건복지부 '결혼, 임신, 출산 등 긍정적 사회 문화에 기여'

19일 밤 나는 절로, 봉선사 편 참가자 봉주와 연선이 연등 아래에서 야간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서예원 기자

나는 절로, 봉선사 편 참가자들이 프로그램 시작 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더팩트ㅣ서예원 기자] "엄마가 어디 가서 이런 말 하지 말라고 했는데... 저는 젊고 예쁜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지원했습니다!"

"봉선사가 터도 좋고, 기운도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만큼은 부처님도 저의 연애를 응원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조계종의 단체 미팅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가 지난 19일부터 20일까지 이틀간 경기 남양주시 대한불교조계종 봉선사에서 열려 24명의 청춘 남녀 중 4쌍의 커플이 매칭되는 성과를 거뒀다.

'나는 절로'는 결혼과 임신, 출산과 관련해 긍정적인 사회 문화를 만들기 위해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보건복지부와 협력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존 남녀가 딱딱한 만남 템플스테이를 2023년 인기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나는 SOLO(솔로)'를 패러디한 이름으로 바꾸며 주목을 받고 있다.

한 여성 참가자가 1박 2일 동안 사용할 가명을 고르고 있다.

취재진이 찾은 봉선사를 찾은 지난 19일 오전. 상기된 얼굴의 참가자들이 비를 뚫고 한 자리에 모였다.

참가자들은 봉선사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하기 전 가장 먼저 1박 2일 동안 사용할 가명을 뽑는 시간을 가졌다. 남성 참가자의 가명은 전부 '봉'으로 시작하며, 여성 참가자의 이름은 '연'으로 시작하는데, 이는 봉선사의 '봉'과 봉선사의 상징인 연꽃에서 '연'을 따왔다.

참가자들은 새롭게 생긴 이름으로 본인을 소개하면서 봉선사로 향했다.

남성 참가자들이 소지품을 제출하고 있다. 이후 여성 참가자들의 무작위 뽑기를 통해 버스 안에서의 자리가 결정된다.

한 참가자가 자기소개를 하는 가운데 다른 참가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번 봉선사 편에는 남자 250명과 여자 298명으로 총 548명이 지원해 최종 선발된 남녀 각 12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봉선사 주지 호산스님은 입재식에서 "오늘 모인 참가자들은 전체 신청자 600여 명 중 24명이 선발된 것이 아니라 지구인 80억 명 중 24명이 온 것"이라며 "봉선사의 좋은 기운으로 소중한 인연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입재식을 위해 모인 참가자들.

청실과 홍실 단주를 받아 서로의 손목에 차고 있다.

봉선사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입재식에서 진심을 담은 자기소개와 함께 남녀 간의 인연을 뜻하는 청실과 홍실 단주를 받았다.

이번 프로그램의 여성 참가자 연선은 자기소개에서 "제 취미는 하천 산책을 하면서 새를 보는 것"이라면서 "오늘 같이 산책하면서 새 구경해 주실 분 찾으러 나왔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남성 참가자 봉현은 "지인들의 결혼식 사회를 종종 보면서 '조건 없는 내 편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서 "이제는 저도 결혼식장의 조연보다는 주연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이 1:1 로테이션 차담을 진행하고 있다.

15분이 지나면 남성 참가자는 옆자리로 이동하며 다음 여성 참가자와 대화한다.

이후 법복으로 차려입은 참가자들은 마주 앉아 1:1 로테이션 차담을 진행했다.

남성 참가자들은 15분 간격으로 자리를 이동하면서 여성 참가자들과 대화하게 되는데, 이 시간이 모든 참가자와 전부 대화할 첫 기회가 된다. 그래선지 차담회가 진행되는 휴월당은 내내 떠들썩했다.

차담회에서는 취미나 직업을 묻는 간단한 대화부터 연애관이나 미래 계획 등 짧은 시간임에도 심도 있는 대화들이 오갔다.

차담회가 끝난 후 한 참가자는 "더 대화해보고 싶은 사람이 1~2명으로 추려졌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남성 참가자들이 저녁 공양 데이트를 함께 할 여성 참가자를 선택했다.

참가자들이 설법전에서 삼배를 올리고 있다.

연꽃밭을 걷는 참가자들.

조계종 사찰음식 명장 1호 선재스님(왼쪽)이 참가자들에게 감자전의 조리법을 설명하고 있다.

저녁 공양 데이트로는 조계종 사찰음식 명장 1호인 선재스님에게 사찰음식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참가자들은 선재스님의 안내에 따라 연잎밥과 야채 된장 볶음, 감자전을 데이트 상대와 함께 만들었다.

선재스님은 "감자전을 뒤집을 때는 인내가 필요하다"며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사람을 만날 때도 인내가 필요하다.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고 배척하지 말고 인내를 갖고 상대를 바라보면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설명하며 음식과 인연의 귀중함을 알렸다.

함께 요리하는 참가자들.

참가자들은 직접 만든 음식으로 저녁 공양을 올렸다.

참가자들이 휴식 시간을 이용해 산책하고 있다.

저녁 공양 이후 몇몇 참가자들은 공식적으로 주어진 데이트 시간이 아님에도 함께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만난 지 10시간쯤 된 참가자들은 이미 서로에 대한 탐색을 마친 상태였다.

휴식을 반납하고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직진하겠다"던가 "꼭 짝을 찾아 나가겠다"고 말했던 참가자들의 의지가 엿보였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의 관계자는 "보통 차담회가 끝나면 커플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보인다"며 "적극적으로 쟁취하려는 모습을 보였을 때 커플이 될 확률이 높았다"고 말했다.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한 남성 참가자가 여성 참가자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청실 홍실을 손목에 낀 참가자들이 게임 도중 주먹을 맞대고 있다.

레크리에이션 시간에는 참가자들이 자신의 인생관을 밝히며 관심 있는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고 게임을 통해 한층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졌다.

레크리에이션이 진행되고 있는 일승원은 게임을 하는 참가자들의 환호와 탄식 소리로 가득해서 문밖에 폭우가 내리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밝은 얼굴로 게임에 참여하는 참가자들. 게임을 통해 야간 자유 데이트 상대가 결정됐다.

열정적으로 임한 게임의 점수는 야간 데이트 상대 결정으로 이어진다. 이번에는 여성 참가자들이 남성 참가자를 선택하는 기회를 얻었다.

짝이 된 참가자들은 우산을 함께 쓰고 봉선사 곳곳을 거닐며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대화했다. 만약 대화하고 싶은 참가자가 다른 참가자와 이미 데이트 중인 상태라면 끝날 때까지 무한히 기다려야 한다. 인기 많은 상대에게 마음이 향한다면 취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원하는 상대와 빨리 대화를 마치고 잠자리에 든 참가자는 12시30분 가량, 늦게 대화를 마친 참가자는 새벽 3시가 넘어야 잠에 들 수 있었다.

늦은 시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하는 참가자들.

야간 데이트를 하는 참가자들이 함께 우산을 쓰고 연등 아래를 걷고 있다.

둘째 날 아침, 한 참가자가 최종 선택 문자를 보여주고 있다.

둘째 날이 밝았다. 참가자들은 오전 7시 30분까지 관계자에게 최종 선택을 담은 문자를 보내야 한다. 최종 선택을 하는 참가자들은 대부분 밤사이 대화에서 서로에게 확신을 얻은 상태였다.

봉식은 "밤에 처마 밑에 앉아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좋은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됐다"며 "열심히 마음을 표현했는데 상대방도 저의 모든 행동과 말을 다 좋게 봐줬다"고 말했다.

최종 선택 후 참가자들이 스님과 차담을 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마지막 산책 데이트를 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최종선택은 일승원에 함께 모여서 맞선택으로 커플이 된 이들만 공개됐다. 이번 '나는 절로, 봉선사' 편에는 총 4커플이 매칭됐다.

커플 성사에 성공한 남성 참가자 봉곤은 "첫 번째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았고, 두 번째 로테이션 차담 이후에도, 또 그 다음에도 짝이었다. 우연이 겹치니까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관심이 생겼다"면서 "따로 만나서 더 얘기를 해 볼 생각이다. 서로 호감이 있는 상태니까 마음이 맞으면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베스트 포토에 선정되기 위해 포즈를 취하는 참가자들.

커플 성공 비결에 대해 봉곤은 "낮에 연꽃밭을 산책하기 전 손수건을 준비했었다"며 "나름의 '플러팅' 비밀인데 손수건에 향수를 뿌려서 햇빛을 가려줬다. 배려하는 모습과 손수건의 향이 좋았다고 상대방이 표현해줬다"고 밝혔다.

봉선사 편에서 네 커플이 탄생했다.

참가자들은 일반적인 소개팅보다 절 안에서 데이트 하는 점이 좋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나는 절로'에서 만난 커플이 결혼까지 이어진다면 재단 대표이사인 묘장스님을 주례로 모실 수도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에 따르면 낙산사에서 이뤄진 커플 1쌍과 백양사에서 이뤄진 커플 2쌍이 올해 가을과 내년 여름에 결혼한다. 낙산사 편 커플이 오는 10월 19일에, 백양사 편 2쌍은 각각 11월 19일과 내년 6월에 백년가약을 맺는다.

커플이 된 연서(왼쪽)와 봉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연꽃이 아름다운 봉선사에서 사랑을

다음 '나는 절로'는 오는 9월에 속초 신흥사, 10월에 김천 직지사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재단 관계자는 "'나는 절로'는 불교계가 주관한 행사지만 참가 신청서에는 종교를 적는 칸이 아예 없다"며 "국가적 과제인 저출산과 낮은 혼인율 극복을 위해 하는 프로그램으로 종교를 따질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와 '인만추(인위적인 만남 추구)'를 넘어 이제는 절에서 만남을 추구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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