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퍼지고 있는 불법 온라인 도박이 사회적인 문제로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일선 교육 현장과 관계기관에서는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파멸을 불러올 수 있는 도박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며 학생들에게 예방 교육 활동은 물론 직접 지원활동도 벌이고 있다. <더팩트>는 앞으로 4차례에 걸쳐 대전시교육청 학교 생활지도 및 교육 정책과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더팩트ㅣ대전=정예준 기자] "형님, 용돈 좀 주세요."
지난해 여름 대전의 한 중학교에서 시작된 한 문장이 SNS를 뜨겁게 달궜다. 학생 수백 명이 동시에 같은 문구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온라인은 '기부받기 챌린지'처럼 변해갔다. 그러나 이 기묘한 현상의 이면에는 청소년을 노리는 신종 사이버 금융사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대전 유성구 소재 대전동화중학교는 이 문제에 직면했고 단순히 위기를 수습하는 것을 넘어 교육의 기회로 삼았다. 정보 교과 수업과 전교 공동 대응, 전국대회 수상에 이르는 과정은 오늘날 학교가 디지털 사회 속에서 어떻게 공동체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좋아요와 댓글이 전부인 시대…사기도 유행을 탄다
사건은 한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시작됐다. 'give_brother', 'give__girl' 등으로 시작하는 계정들은 고급 차량, 돈다발, 계좌잔고 화면 등을 올리며 "댓글을 달면 기부를 하겠다", "메시지를 보내면 룰렛을 돌려 배수만큼 돈을 준다" 등의 글을 유포했다.
학생들은 처음엔 장난처럼 게시글을 퍼날랐지만 곧 DM(다이렉트 메시지)을 통해 소액 송금을 유도당했고, 일부는 링크 클릭 후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겪을 뻔하기도 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같은 사기 수법이 10년 전 페이스북에서 똑같이 등장했던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엔 플랫폼만 인스타그램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정재웅 대전동화중 정보교사는 "SNS는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사람을 속이는 방식은 놀랍도록 반복된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그 '패턴'을 인지하는 힘"이라며 사건의 본질을 짚었다.
◇사기를 넘어서 배움으로…"그냥 사기잖아요?"라는 직관을 '증거'로 바꾸다
정 교사는 단순히 사기를 막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학생들과 함께 이 사건을 '수업'으로 끌어들였다. 또한 이를 팩트체크 전국대회 출전이라는 실천 과제로 연결했다.
담임반 학생 3명과 팀을 꾸린 뒤 사기 계정의 생성일, 게시물 유형, 이미지의 원출처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직접 메시지를 보내보고, 응답 패턴을 분석했으며, SNS 알고리즘의 확산 구조도 추적했다.
학생들은 처음에 "그냥 보면 사기인 거 알잖아요"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그것을 타인에게 증명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했다. 그 과정에서 논리적 사고력, 미디어 리터러시, 정보 검증 기술까지 다방면의 역량이 요구됐다.
학생 한 명은 발표를 마친 뒤 "무언가 '당연하다'고 말하는 데 필요한 수많은 증거와 질문, 그것이 진짜 배움이구나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우리가 직접 겪은 사기…스스로 정의를 세우다
학생들은 사기 계정 운영자의 실체에 한발 더 다가섰다. 한 학생이 실제로 7000원을 입금한 뒤 돈을 돌려받지 못했고 곧 계정이 차단됐다. 이를 바탕으로 교사와 학생은 '디지털 수사'에 가까운 조사 활동을 이어갔다.
활동 시간대, 통화 가능 시간, 목소리, 말투, 동아리 활동 요일 등 디지털 단서를 모은 뒤 교사는 '학교알리미'를 통해 해당 학생이 다닐 것으로 추정되는 학교를 특정했다.
결국 통화를 통해 사기 계정 운영자가 또래 학생임을 밝혀냈고, 지도 교사는 해당 학교에 직접 연락했다.
결과적으로 해당 학생은 학교 차원의 조사를 받고 5일간 정학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동화중학교의 대응은 단순한 징벌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문제를 일으킨 학생도 우리와 똑같은 또래입니다. 그를 몰아세우기보단, 우리가 왜 이 일을 끝까지 추적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디지털 시민으로 성장하는 아이들…그 자체가 교육의 목적
대전동화중학교 학생들이 발표한 팩트체크 주제는 '룰렛·기부 사기는 왜 반복되는가?'였다. 단순히 사기를 피하는 법을 넘어서 사실을 바탕으로 사기임을 논증하는 법, 사회적 대응이 필요한 이유까지 발표는 치밀하고 설득력 있게 구성됐다.
그 결과, 전국 64개 팀 중 우수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멘토로 참여한 언론인들은 "디지털 정보 시대에 필요한 시민 자질을 스스로 보여준 팀"이라고 극찬했다.
정재웅 교사는 "이번 경험을 통해 학생들은 단순한 사용자에서 한 명의 디지털 시민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들이 실천한 정의는 교과서 속 문장이 아니라 현실 속 행동과 책임으로 나타난 교육의 결과입니다."
◇가짜 정보에 대응하는 학교, 정의를 실천한 학생들
대전동화중학교의 이 사례는 단순한 SNS 사건 대응을 넘어 학교와 교사가 정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살아있는 교육 모델이다.
학생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디지털 세계의 건강한 구성원이자 '정의 실천자'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그것은 '좋아요 하나로 시작된 사기'를 한 교사의 책임감과 한 학급의 호기심, 그리고 공동체의 연대로 이겨낸 이야기이기도 하다.
※ ''좋아요' 하나로 시작된 사기…중학생들의 손으로 진실을 밝히다' 기사는 대전시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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