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루고루-끝] 소멸지역 속 악전고투…그래도 희망은 있다


지역 머무를 이유, 정부가 설명할 수 있나
지방소멸 대응에 청년들 문제의식 담겨야
청년농촌 보금자리로 되찾은 아이들 '주목'

지역 균형과 지방소멸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더팩트>가 5월 20~23일 전국 각지에서 만난 10여 명의 귀농·귀촌 청년들은 지역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를 정부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운데 사진은 소멸 지역 내 청년농촌 보금자리에서 통학 중인 초등학생들. /이철영 기자

기울어진 운동장. 한쪽으로 쏠려있는 경우를 비유한다. 대한민국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되면서다. 반대로 지방은 소멸 일보 직전이다. 지금 당장 무게 추를 맞춰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지역균형발전 공약으로 '5극 3특'(5대 초광역권과 3대 특화권역)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전국을 두루두루 살펴 지역을 고루고루 발전시켜야 한다. <더팩트>는 지난 대선 기간 전국의 젊은 귀촌·귀농인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그들이 싹틔운 희망을 통해 지방소멸 진단과 대안을 모색하고자 총 9편의 [고루고루]를 기획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이철영·신진환·김정수 기자] "정주 여건이 부족하다 보니 완전한 정착에 고민이 많은 게 사실이에요. 나중에 결혼을 하면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게 될 텐데, 교육 문제뿐 아니라 여러 경험을 시켜줄 수 있는 환경이 아니거든요. 이대로라면 도시로 다시 나가서 지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남 구례군으로 귀촌한 진아린(30) 씨.

"청년 정책을 활용한 사업을 진행 중인데 정부가 바뀔 때마다 기조가 바뀌는 문제가 있어요. 더군다나 정책 담당자도 일정 시기가 지나면 교체되기 일쑤죠. 담당자별로 청년 정책을 대하는 정도가 제각각이라 설득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저희만 하더라도 벌써 세 번 정도 담당자가 바뀌었어요." -경남 의령군에서 청년 마을 '홍의별곡'을 운영 중인 안시내(31) 씨.

아버지의 고향인 전남 구례로 귀촌해 카페를 운영 중인 진아린(왼쪽) 씨는 완전한 정착을 위해서는 정주 여건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남 의령에서 청년 마을 홍의별곡을 운영 중인 안시내 씨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기조가 바뀌는 문제가 있다며 일관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구례·의령=이철영 기자

지역 불균형과 지방소멸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더팩트>가 5월 20~23일 전국 각지에서 만난 10여 명의 귀농·귀촌 청년들은 지역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를 정부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예산으로 범벅된 거대 정책이 아닌 지역별 상황에 맞는 실효적 방안부터 뿌리내려야 한다는 것. 정책 시행자와 이해 당사자 간 구조적 불통 문제가 해소돼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지역 청년들은 소수 이방인…구조적 문제까지 '첩첩산중'

수도권에서 지역으로 내려온 청년들은 이구동성으로 '정부 대출'에 우려를 표했다. 최대 5억원 대출에 1.5% 저리로 5년 거치 후 20년 상환하는 청년창업농 등이 대표적이다. 경험도 연고도 없는 청년이 농업만으로 대출을 해결하고 안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겉보기엔 그럴싸한 스마트팜도 한 해 농사를 보장해 주지 못하며, 초기 자본금도 정부 대출로는 턱없이 모자란다고 했다.

이를 위해선 정부가 지역 내 노는 땅을 사들여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역으로 스마트팜 등을 지어주는 식이다. 아울러 빈집을 매수해 정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 청년들이 농업에 첫발을 떼기 전 현실을 깨닫게 해줘야 한다는 제언이 있었다. 지역별 일자리 다양화에 대한 목소리도 있었는데, 농업에 국한된 정책은 청년 유인과 지방소멸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이유였다.

2024 귀농어·귀촌인통계. /통계청

지역에서 청년들은 '소수 이방인'으로 분류되다 보니 공유받을 수 있는 정보도 제한적이었다. 청년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플랫폼도 부분적이어서 고립감 등 심리적 불안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소멸위기 지역 대부분이 초고령사회인 터라 지역 정책도 고령층에 집중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 등 정책 시행자들이 '표'를 고려한 까닭에 이같은 불균형은 고착한 지 오래였다. 정책 지원 사업에 이들의 입김이 작용하는 폐단도 있었다.

구조적 문제는 더 있었다. 지역별로 귀농·귀촌 또는 인구소멸대응 부서가 설치돼 있지만, 공무원 인사 특성상 담당자가 정기적으로 교체됐다. 그렇지 않아도 단순한 건의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같은 사안을 두 번, 세 번 설득하는 과정이 다반사였다. 지속성이 담보되지 못하다 보니 때마다 휘둘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선거가 끝난 뒤 정책이 뒤집어지는 경우도 감수해야 했다.

어찌어찌 버틴 끝에 정착하더라도 결혼과 육아 문제가 남아 있었다. 특히 아이들의 교육 문제가 만만치 않았다. 해마다 입학생 규모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초중고를 졸업시키기엔 한계가 있었다. 주변에 이렇다 할 학원이 없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또래가 없다 보니 사회성을 길러주기 어려운 환경이기도 했다. 결국 아이와 엄마는 도시로 떠나고 아빠는 지역에 남는 '귀농·귀촌 기러기' 가족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李 지방소멸 공약, 청년들 문제의식과 맞닿아…정부 역할 중요

지방소멸에 대한 문제의식은 새 정부 출범 때마다 있었다. 이번 이재명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공약한 '5극 3특'을 중심으로 지역 불균형 해소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도권 '1극'에서 벗어나 5대 초광역권(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과 3대 특별자치도(제주·강원·전북)를 중심으로 균형발전의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의미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지역 청년들의 문제의식과 큰 차이가 없다. 이 대통령은 공약 이행 방법으로 △행정체계 개편을 위한 범부처 통합 태스크포스(TF)구성 및 로드맵 마련 △주민의사를 반영한 지자체 통합방안 마련 등을 내놨다. 청년들이 지적한 정책의 지속성이 보장되고, 원주민뿐 아니라 이들의 목소리까지 적절히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광주시민·전남도민 타운홀 미팅에서 수도권 집중 문제를 지적하며 지역균형발전 방향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고 논의했다. /대통령실

이 대통령은 이 외에도 △지역대표 전략산업 육성과 지역투자 촉진 △주거 여건 개선, 빈집 정비, 세컨드 하우스 확산 등을 제시했다. 지역 청년들이 언급했던 지역별 일자리 다양화, 빈집 매수, 정주 공간 확보 등과 상통한다. 방법은 알고 있지만 해결이 지지부진하다는 건 구조적 문제에 기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같은 난맥을 해소하는 건 정부의 몫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당정대 협의회에서도 지방소멸 문제가 거론된 점은 의미가 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18일 협의를 마친 뒤 당정대가 인구소멸지역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또 비수도권 지방민들에 대한 우대가 필요하다며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과정에서 이들을 위한 정책을 확대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정부의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위원회에서도 지역 불균형과 지방소멸을 언급한 대목이 있었다. 이춘석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장은 지난달 20일 국토교통부 업무 보고와 관련해 "대한민국의 진짜 성장을 위해서는 국토부가 균형발전 주무 부처로서 실질적인 균형발전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며 "소외되고 소멸 중인 지방을 다시 살리기 위한 이행 가능한 균형발전 정책을 마련해달라"고 당부했다.

지난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지역 균형 발전을 꾸준히 주장했던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지난달 29일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행정수도 이전과 초광역 협력을 통한 5극3특을 국토 공간의 대전환으로 반드시 성공시킬 것"이라며 "국가운영의 틀을 새롭게 설계하는 일로 개별 부처를 넘어 전 부처와 중앙정부·지방정부 간 협력이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충남 서천군 청년 보금자리에는 청년은 물론 아이가 있는 가정이 입주해 있다. 청년 보금자리는 최초 2년에 2회 갱신(1회 2년)으로 최대 6년간 생활할 수 있다. 취학 아동이 있다면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최장 10년 거주할 수 있다. /서천=이철영 기자

◆그래도 희망…'청년농촌 보금자리'로 폐교 위기 학교 살아나

충남 서천군은 지방소멸 위기에 직면한 대표적 지역이다. 지난해 3월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전국 시군구 소멸 위험 지수'에 따르면 서천군은 최하위 지수에 해당하는 0.129를 기록, 소멸 위험 지역에 포함됐다. 문제는 그중에서도 최고 위기 등급인 소멸 고위험(0.2 미만)에 속했다는 것. 이런 지역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폐교 위기의 초등학교가 활기를 되찾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달 20일 찾은 서천군 비인면 내 '청년농촌 보금자리'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2019년 시범사업으로 조성한 4개 지구(괴산, 서천, 고흥, 상주) 중 하나다. 귀농·귀촌 청년들의 주거·보육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시행된 해당 사업은 올해도 진행 중이다. 반드시 귀농·귀촌을 해야만 자격 요건이 주어지는 건 아니고, 만 40세 미만으로 신혼부부이거나 1명 이상 자녀 양육 가정이라면 지원할 수 있다.

임대 기간 역시 파격적이다. 최초 2년에 2회 갱신(1회 2년)으로 최대 6년간 생활할 수 있다. 취학 아동이 있다면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최장 10년 거주할 수 있다. 임대료는 월 8~25만원 수준으로 보증금은 500~2500만 원이다. 단지가 조성되면 운영권은 지역에 일임되는데, 각자 사정에 맞게 자율적인 혜택 부여가 가능하다. 일례로 서천군은 아이 1명당 월세를 깎아주고 있다.

서천군 청년 보금자리는 폐교 위기에 있던 초등학교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취재진이 찾은 지난달 20일 오후, 노란색 버스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내렸다. /서천=이철영 기자

서천군 보금자리에서 만난 한 주민은 "아이가 지금 다니는 초등학교가 폐교 위기였는데, 지금은 전교생 3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이곳 출신"이라며 "주변 인프라가 부족한 건 맞지만 어느 정도 기준을 낮추고 왔기에 만족도는 높다. 아이들도 정서적으로 안정됐다"고 말했다. 서천군은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활용해 마산면에도 비슷한 단지를 조성, 폐교 위기에 처했던 마산초등학교가 활력을 되찾는 중이다.

청년농촌 보금자리는 2019년부터 시작돼 △2022년 밀양 △2023년 삼척, 음성, 공주, 김제 △2024년 인제, 정선, 보은, 부여, 남원, 순창, 곡성 하동 등으로 확대 중이다. 올해는 제천, 장수, 무안·신안, 포항·고령, 화천, 영동, 당진, 함평 등이 선정됐다. 지난해 말 기준 2019년 선정 4개 지구에는 무려 123세대가 입주를 완료했다. 모두 280명에 아동만 92명이다. 귀농·귀촌 청년들의 정착뿐 아니라 소멸 위기에 직면한 지역 학교에도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지방소멸은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만큼 작은 단위에서 시작된 재생 사업이 더 큰 단위로 확대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보듬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농림부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청년농촌 보금자리 사업이 지역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기보단 마을 단위에 그치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주변 초등학교 학생 절반 이상이 관련 세대에서 배출되고, 그동안 없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는 건 장기적으로 볼 때 지역소멸 문제에 효과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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