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서 맞는 첫 명절…가족도 두 쪽 날까 우려


尹 탄핵 두고 세대 간 차이 극심
"계엄 전에도 다퉜는데…회피하고 싶어"
"의견 내기엔 자식 눈치 보여"

모처럼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기회이지만 긴 연휴가 그리 달갑지 않은 이들도 있다. 사진은 설 명절 연휴를 하루 앞둔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을 찾은 역귀성객이 선물 꾸러미를 들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모습. /박헌우 기자

[더팩트ㅣ국회=김수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하는 가족 구성원 앞에서 어떻게 표정 관리를 해야 할까요?" "탄핵을 찬성한다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다."

최장 9일까지 쉴 수 있는 설 연휴가 다가왔다. 모처럼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기회이지만 긴 연휴가 그리 달갑지 않은 이들도 있다. 근래 대한민국을 뒤덮은 '12·3 비상계엄 사태와 윤 대통령 탄핵 정국'과 같은 정치 이슈가 혹여나 '집안싸움'으로 번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최근 정치 현안을 두고 지역 간 인식 차이만큼이나 극심해진 게 세대 간 인식 차이다. 이는 실제 수치로도 나타날 정도다. 여론조사업체 한국갤럽이 지난 21일~23일 전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한 결과에 따르면 20∼40대에서는 탄핵 찬성이 70% 내외, 60대는 찬반 양분, 70대 이상에서는 반대가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소위 MZ세대들은 최근 혼란한 정국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번 연휴에는 이전보다 더 큰 견해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전에도 친척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서로의 다른 정치 성향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가 심화할 것이라는 것이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30대 권 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을 당시 작은할아버지가 '빨리 다시 데려와야 한다'고 말해 삼촌이 허겁지겁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간 적이 있다"라며 "이번에도 만약 윤 대통령을 옹호한다면 표정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20대 최 씨는 "나이도, 사는 지역도 다른 친척들끼리 모여 대화하다 보면 서로 생각이 안 맞는 지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라며 "그런 지점에서 시작해 갈등이 격해져 고성이 오고 갔던 경험이 있다. 계엄 사태 이후 정치적 의견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걸 느끼는 상황에서 친척들 간 또다시 갈등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면 벌써 머리가 아프다"고 토로했다.

20대 취업준비생 김 씨도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을 했던 이들과 경상도 출신의 보수 지지자가 섞여 있어 이전에도 명절마다 갈등 상황을 자주 겪었다"며 "같이 시간을 보내다가도 어른들의 싸움으로 중간에 집에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설 명절 연휴 첫날인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광화문 국민대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박헌우 기자

갈등 상황이 발생한다면 맞서기보다는 피하겠다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했던 20대 김 씨는 "계엄 사태는 타협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는 사안"이라며 "이전과 달리 성인으로서 의견을 낼 수 있는 나이가 됐지만 대화를 회피하고 싶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평소 해외에서 근무하다 명절에 한국으로 들어오는 김 씨는 "다른 이슈도 아니고 내란 사태를 가지고 이견이 발생한다면 더 이상 가족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며 "다른 주제로 대화를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명절을 앞두고 이 같은 우려를 비단 젊은 세대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경기도 의정부에 거주하는 60대 황모 씨는 "가족들이 모여 TV를 시청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정치 이야기가 나오는데 딸·아들 앞에서 목소리를 내는 게 조심스럽다"라며 "무슨 말을 꺼내도 버럭 화를 내니까 눈치 보여 이번 명절도 고민이긴 하다"라고 했다.

현 시국을 반영한 새로운 버전의 '설 행동 강령'이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통상 명절에 친척들끼리 모였을 때 삼가야 하는 '공부는 잘하는지, 어느 대학교에 합격했는지, 취업은 했는지, 결혼은 언제 할건지' 등의 질문처럼 이번 연휴에는 '가족이 모이면 뉴스 틀지 않기', '신문은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우기' 등의 지침이 생긴 것이다.

전문가들은 명절 연휴 정치 이야기는 피할 수 없는 주제인 만큼 서로 의견을 나누되 자신의 의견에 동의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자세가 제일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에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와 '이 점은 당신이 받아들여야 해'는 완전히 다르다"라며 "상대에게 나의 의견을 강요하는 것은 상대의 반발 또는 침묵만을 불러 가족 간의 어색한 상황만을 불러올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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