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잇달아 부진한 성적표를 내놓고 있다. 지난해 업계 불황에 따라 실적 쇼크 수준의 낮은 수익성을 보였다. 그러나 회사별로 미묘한 온도 차가 느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기업은 상대적으로 불황의 상처를 덜 입었다는 설명이다.
12일 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화학 빅4' 기업 중 세 기업이 지난해 실적 발표를 마무리한 상태다. LG화학, 금호석유화학, 롯데케미칼 순으로 지난해 성적을 내놨는데, 나란히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석유화학 산업군의 불황이 장기화된 영향이다. 한국석유화학협회장인 신학철 LG화학 부회장도 신년사에서 "지난해 석유화학 업계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와 함께 초유의 고유가 현상 지속, 공급 과잉, 세계적 수요 둔화가 겹쳐 어느 때보다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고 말했다.
기업별로는 LG화학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매출 50조 원대를 넘어섰지만, 석유화학 부문 부진으로 크게 웃지 못했다. LG화학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조9957억 원으로 전년과 비교해 40.4% 감소했다. 지난해 4분기 실적만 보면, 영업이익 1913억 원으로 74.5%나 급감했다. 석유화학 사업이 2006년 2분기(-55억 원) 이후 16년 만에 분기 적자를 낸 것이 뼈아팠다. 손실 규모는 1660억 원이다.
금호석유화학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조1473억 원으로, 전년 대비 52.3% 줄었다. 마찬가지로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1139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0.6% 감소했다.
롯데케미칼은 적자 전환했다. 손실 규모는 7584억 원이다. 4분기에는 영업손실 3957억 원을 기록했다. 에틸렌 등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기초소재 사업 부문이 영업손실 2757억 원을 내며 크게 부진한 영향이다. 롯데케미칼은 "중국의 코로나 봉쇄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제품 가격·수요 감소, 원료가 상승 등 대외 불안정성이 지속됐다"며 "미·중 글로벌 공급망 재편, 세계 경제 인플레이션, 중국발 증설에 따른 공급 과잉 등으로 대외 환경의 불확실성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나란히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수치에 따라 기업별로 표정이 조금씩 다를 것으로 보고 있다. 먼저 배터리(영업이익 1조2137억 원), 첨단소재(9230억 원), 생명과학(730억 원) 등 먹거리 발굴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LG화학은 피해를 최소화해 안도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로 LG화학은 내부적으로 "지난해 어려운 대내외 환경 속에서도 전지소재 사업이 확대되며 보다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경쟁사들과 달리 신사업에 늦게 뛰어든 롯데케미칼은 업황 부진의 직격탄을 맞아 표정이 더 어두울 전망이다. 지난해 롯데케미칼의 첨단소재 사업 영업이익은 320억 원이다.
'빅4' 기업 중 아직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한화솔루션(16일)의 성적표가 나오면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관련한 중요성은 더욱더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솔루션은 태양광 사업을 앞세워 '빅4'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호실적 달성이 전망된다. 증권가에서는 케미칼 부문의 수익성 부진을 태양광을 포함한 신재생에너지 부문이 메워 한화솔루션이 연간 영업이익 1조 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기업들도 사업 구조적 개선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 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 석유화학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신사업 확대를 통해 전통 사업의 의존도를 낮추는 것 또한 경영 목표로 삼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사업 구조 재편에 공을 들이고 있다"며 "미래 사업 역량을 강화해 지속가능한 성장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LG화학은 이번 실적을 발표하면서 올해 양극재 생산량을 50% 이상 늘리는 등 첨단소재 부문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금호석유화학은 앞서 ESG 선도 사업 체계 구축과 신성장 동력 확보에 2조700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이차전지 동박 제조 업체인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를 통해 석유화학 의존도를 낮추고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겠다는 방침이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일진머티리얼즈의 인수 완료와 고부가 제품 확대 등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바탕으로 수익성을 제고하고, 수소·배터리·친환경 제품 등 미래 신사업의 지속 투자·가시화를 통해 그린에너지·스페셜티 소재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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