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청소한 것' 주장…법원도 "과실은 처벌할 수 없다"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기간 박영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 벽보를 대걸레로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시민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피고인의 과실로 벽보가 찢어졌을 수도 있어 '과실범'을 처벌할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선일 부장판사)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 씨는 지난해 3월 자신이 사는 서울의 한 빌라 앞에 걸린 박 전 후보의 벽보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A 씨가 평소 박 전 후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대걸레로 벽보를 세 차례 내려쳐 찢었다는 것이 검찰 공소사실이다.
A 씨는 검찰 조사에서 벽보를 훼손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이후 재판에서 일관되게 '벽보를 훼손할 의도가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대걸레로 집 앞 계단을 청소한 뒤 먼지와 물기 등을 털기 위해 벽보가 붙은 철망 펜스 쪽으로 내려쳤다는 설명이다.
법원은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CCTV 영상에 따르면 피고인은 벽보가 설치된 철망 펜스 쪽으로 대걸레를 세 차례 내려치기는 했으나 모두 다른 곳을 향했다. 만약 피고인이 특정 후보의 벽보를 훼손할 생각이었다면 모두 다른 곳으로 내려치는 건 자연스럽지 않다"며 "피고인이 대걸레로 내려치자 뒤로 밀린 벽보가 철망 펜스 뒤쪽에 나와있던 나뭇가지에 찔려 찢어졌을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A씨가 과실로 벽보를 훼손했을 수는 있지만 고의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벽보를 훼손한 과실범을 처벌하는 규정도 없다고 덧붙였다.
A 씨는 검찰 조사에서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취지의 진술을 했지만 "진술 앞뒤 맥락 등에 비춰 자신의 행위로 벽보가 훼손됐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라며 "검찰 조사에서 훼손된 벽보의 후보에게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었다고 진술했다는 사정만으로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검찰은 1심 무죄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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