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여성혐오 범죄 기승(上)] 교제폭력·가정폭력·묻지마 폭력 늘지만 대책은…

최근 경남에서 여성혐오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나 이를 예방할 뚜렷한 대책이 없어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픽사베이

여성단체 "개인 문제 아닌 사회적 문제 인식·대처해야"

[더팩트ㅣ창원=강보금 기자] "여성혐오는 개인의 감정상태로만 치부해서는 안된다. 여성혐오는 엄연히 사회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앨런 G. 존슨은 여성혐오를 '여성을 여성이란 이유로 혐오하는 문화적 태도'라고 정의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여성단체에서는 여성혐오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보다 사회적 문제로 보고 대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여성혐오의 감정을 갖는 것이 범죄일까. 경남의 한 정신과 전문의는 "감정은 자유로운 의식상태로, 여성을 혐오한다고 해서 범죄가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며 "다만 이러한 감정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타인을 해하는 행위로 이어질 때 범죄가 성립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경남에서는 여성혐오로 인한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이를 예방할 뚜렷한 대책이나 해결방안이 없어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경남에서 잇따르는 여성혐오 범죄들

지난해 7월 경남 사천에서 50대 남성이 지나가는 30대 여성의 얼굴 등을 주먹으로 마구 때리는 묻지마 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이 남성은 만취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 남성은 여성이 사는 2층 집 앞까지 몰래 쫒아간 뒤 여성이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을 때 뒤에서 공격했다. 이들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로 파악됐다.

또 11월에는 더욱 끔찍한 묻지마 상해 사건도 발생했다. 사천시 삼천포항 팔포매립지 내 한 주점에서 나오던 50대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5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목 등을 찔렸다.

행인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힌 이 남성은 "먹고 살기 힘드니 교도소에 보내 달라"고 떼를 썼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범행 2시간 전 인근 지구대를 찾아 "20년 넘게 선원생활을 하다가 실직했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어 교도소에 가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지난해 10월 김해에서는 겨우 2시간여 동안 일면식도 없는 5명의 여성들을 상대로 특수상해, 특수협박 등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40대 남성이 현장에서 붙잡혔다. 이 남성은 재판과정에서 여성을 혐오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묻지마 범죄'임에도 왜 타깃은 모두 여성이었을까.

경남여성단체연합의 한 관계자는 "특정한 대상이 없는 묻지마 범죄의 경우 타깃을 정할 때 자신보다 약한 존재 혹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타깃으로 한다"면서 "피의자들은 '여성은 나보다 약하고 내가 더 우월하다'는 감정, 즉 여성혐오의 감정을 바탕으로 이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2019년 전국적으로 떠들썩하게 했던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 사건'도 마찬가지로 보인다고 했다. 이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안인득(44)은 정신질환(조현병)을 주장했지만 사건 당시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안인득이 살해한 피해자들은 모두 범인보다 상대적인 약자였으며 특히 여성 피해자가 다수를 이뤘다는 것이다.

당시 사건의 목격자에 따르면 안인득은 상대방의 덩치가 큰 경우 노려보기만 할 뿐 전혀 공격하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여성혐오 범죄 기승 부리는 까닭은?

그렇다면 여성혐오 범죄가 최근들어 기승을 부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경남여성단체연합 윤소영 사무처장은 "여성혐오라는 용어가 지난 2016년쯤 사용되기 시작했을 뿐 과거에도 관련 범죄는 지속적으로 발생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최근 들어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졌다"며 "사회 전반에서 기준이 모호한 범죄들이 생겨나고 있는 가운데 시민의 문제의식과 범죄의 다양성이 만나 여성혐오 범죄로 분류된 사건들이 주목받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여성혐오 범죄가 발생했을 때 예전에는 신고조차 쉽게 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했으나 지금은 오히려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럼에도 현재까지 여성혐오 범죄 예방에 대한 뚜렷한 해결 방안이 나오지 않아 시민들이 불안해하면서 더욱 이슈화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윤 사무처장은 "최근 여성혐오 범죄에 대해 시민들 스스로가 세분화 시키고 있는데, 예를 들어 교제폭력, 가정폭력, 성폭력, 묻지마 폭력 등 구체적으로 나누고 있다. 그러나 아직 사법제도가 이를 따라오지 못해 대처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hcmedia@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