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후 공황장애 악화…"업무·사망 인과관계 인정"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회사 엘리베이터에 갇힌 이후로 공황장애가 심해져 극단적 선택을 한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3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유환우 부장판사)는 공황장애를 앓다 극단적 선택을 한 A씨의 부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 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게임 디자인 업무를 담당하던 A씨는 2016년 10월 회사에서 개발한 온라인 게임 출시를 앞두고 야근을 했다. 오후 9시 무렵 퇴근하던 A씨는 회사 건물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10분간 갇히게 됐다.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왔지만 이내 A씨는 쓰러졌다. A씨는 119 구조대에 의해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당시 구급일지에는 '구조된 후 많이 놀라고 불안하며 진정 안 돼 신고. 과호흡 추정으로 손발 저림'이라고 적혔다.
사고 이후 A씨는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증상이 심해지자 A씨는 한 달 넘게 입원해 치료를 받기도 했다. 업무 스트레스까지 겹쳐 A씨는 극심한 우울감을 호소했고, 2017년 4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A씨의 어머니와 언니가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A씨는 끝내 사망했다.
A씨의 부모님은 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에 A씨의 부모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법원은 A씨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A씨의 사망은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건이 큰 이유였다고 판단했다. 사무실 건물 엘리베이터에서 일어난 사고이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사고 이전에는 회사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나 사고 이후부터는 공황장애 증상이 본격적으로 발현됐다"며 "이 사고로 망인의 공황장애가 본격 발현되고 심화됐음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A씨가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점도 인정했다. 실제 A씨 회사에서 출시한 온라인 게임은 출시 후 반응이 좋지 않았다. 이후 회사 자금 사정 악화로 A씨를 포함한 다수의 직원이 퇴사했다.
재판부는 "진료기록을 볼 때 A씨는 게임 실패에 대해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게임 성공 여부는 회사의 명운을 좌우하는 중요 문제로 보인다"며 "상당한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으리라는 점을 쉽게 추단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근로복지공단은 A씨가 평소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점이 업무상 스트레스보다 큰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진료기록에 의하면 2016년 12월부터 가정불화 언급은 하지 않지만, 사망 직전까지 업무 스트레스를 언급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록 A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더라도 업무상 재해인 이 사고로 공황장애가 악화됐다"며 "A씨는 정상적인 행위선택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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