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재판개입 아니라면서…은밀히 건넨 '통진당 문건'

통합진보당 소송 관련 문건을 담당 판사들에게 개인적으로 전달한 전 법원행정처 심의관이 재판 개입 의도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사진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한 모습. /남용희 기자

'사법농단' 임종헌 공판…전 행정처 심의관 증인신문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통합진보당 소송 검토 문건을 담당 판사들에게 전달한 전 법원행정처 심의관이 "재판 개입 의도는 없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문건을 받은 판사들이 되레 "감사하다"고 했다고 했다. 불순한 의도가 없는데도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전달한 이유는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속행 공판에는 전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심의관 최모 씨가 증인으로 나왔다.

최 전 심의관은 법원행정처가 통진당 잔여재산 가압류 사건을 검토한 문건을 사건 담당 판사들에게 전달했다. 그가 전달한 문건은 '통진당 예금 계좌에 대한 채권가압류 신청사건에 관한 검토'라는 제목이다. 통진당 잔여재산을 가압류가 아닌 가처분 방식으로 처분해야한다는 결론이 담겼다.

검찰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된 정당의 재산 처분 방식을 놓고 법원행정처가 특정 결론을 낸 뒤, 이같은 내용의 문건을 제공해 재판에 개입했다고 의심한다. 문건을 받은 판사들은 인사권을 쥔 기관이 만든 결론대로 사건을 끝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는 설명이다.

이날 재판에서 최 전 심의관은 이 문건을 담당 판사들에게 전달한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참고 자료를 제공했을 뿐 재판 개입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판사들이 재판 중 논문 등 다양한 자료를 참고하고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 듯이 "법관이 참고 자료를 본다고 해서 무조건 그 내용에 구속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최 전 심의관은 문건을 건넨 판사 중 이를 거절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며, 오히려 감사하다는 답장이 왔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결정을 내린 뒤 이정희 전 의원이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검찰은 최 전 심의관의 문건 전달 방식이 유난히 은밀했다는 점에 집중했다.

이날 증인신문 내용을 종합하면, 최 전 심의관은 먼저 판사들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해 문건을 전달해도 될지 의사를 물었다. 판사들이 '승낙'하면 이메일로 문건을 전달했다. 이 문건은 재판연구관 3명이 검토해 작성한 문건이었다. 하지만 보고서는 법원행정처 양식을 취하지 않고 문건의 출처도 불분명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졌다.

검찰은 최 전 심의관도 문건 전달이 부적절하다는 걸 알았다고 본다. '윗선' 지시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일선 판사들이 압박을 받지 않도록 법원행정처 보고서 양식을 지우고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보내는 일종의 수를 썼다는 것이 공소사실이다.

최 전 심의관 역시 검찰 조사에서 "법원행정처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담당 판사들에게 쟁점을 전달하게 되면 실수를 할까 조심스러웠다"며 난처했던 당시 심경을 전했다. 법원행정처 보고 양식을 뺀 이유로도 "판사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날 최 전 심의관의 증언은 다소 결이 달랐다. 그는 자신의 진술을 놓고 "검사님이 '문건을 받고 위축된 법관도 있었다'고 말씀하시길래, 만약 그랬다면 (문건 전달이) 부적절했겠다는 뜻"이라고 의미를 정정했다.

각 법원 기획법관을 통해 공식적으로 전달하는 간편한 방법을 왜 쓰지 않았냐는 질문엔 "오해를 살까봐 그랬다"고 말했다. 심의관이 일선 판사들에게 대놓고 문건을 보냈다가 괜한 오해를 살까봐 비공식적으로 문건을 전달했다는 이유다.

검찰이 업무편람과 비교해 문건 배포 경로를 집중적으로 질문하자 "당시엔 공식적 루트로 전달할 생각을 못했다"는 이유가 추가됐다. 업무편람은 통상적으로 일선 판사들에게 배포되는 문건이다.

검찰: 업무편람의 경우 일선 판사님께 전달할 때 어떤 경로를 거칩니까?

최 전 심의관: 시기마다 다른데, 판사 개인에게 주기도 하고 판사실별로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근무할 때에는 실별로 드렸던 것 같습니다.

검찰: 판사 개개인에게 우편으로 보내지는 않을테고, 각 법원의 공식적 루트를 통해 전달하지 않습니까?

최 전 심의관: 예….

검찰: 각 법원 수석 부장님이나 기획 법관님 등 공식적 루트로 전달하는게 쉬울텐데 (통진당 잔여재산 검토 문건은) 굳이 힘들게 각 법원 판사님들께 전화를 걸어 승낙을 받고 전달했습니까?

최 전 심의관: 그 생각은, 그 당시 하지 못했습니다. 글쎄요. 왜 그 생각을….

재판 개입 의도는 없는 문건이지만, 공식적으로 전달하는 건 우려했다는 다소 모순된 증언도 나왔다.

검찰: 전달하는 방법이 무척 고민되고 불편했다고 하셨잖아요. 기획법관을 통해 공식적으로 전달하면 그럴 염려도 없는데 왜 굳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최 전 심의관: 지금의 제 생각인데, 그런 절차로 가면 법원행정처 의견이 공식적으로 전달될 우려가 있습니다.

통합진보당 소송 관련 문건을 담당 판사들에게 개인적으로 전달한 전 법원행정처 심의관이 재판 개입 의도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사진은 대법원. /남용희 기자

재판이 끝나갈 무렵 마지막 발언 기회를 얻은 최 전 심의관은 이 사건 피고인인 임 전 차장은 통진당 잔여재산 소송 문건 전달과는 관련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마음이 아프다"는 심경도 밝혔다.

최 전 심의관은 "본건과 관련해 피고인(임 전 차장)은 전혀 관련이 없다고 알고 있다. 조사받을 때 주변 분들을 내심 의심했었는데, 이 건과 관련해선 피고인은 아무 관련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친구들, 동료 판사들과 술자리에서도 깊은 얘기가 오갈 때 '이런 상황엔 어떻게 하는게 맞았을까'하고 물어본 적도 있었는데, 뚜렷한 답을 얻지 못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 당시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던 사법행정 담당자의 역할을 잘 판단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재판부에 전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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