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이춘재 8차 살인 사건' 그들은 왜 조작했나

이진동 수원지검 2차장 검사가 23일 오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 브리핑실에서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과 관련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뉴시스

"강압수사에 거짓자백"…조만간 재심 개시할 듯

[더팩트ㅣ윤용민 기자] "나는 범인이 아니다. 경찰이 때리고 가혹 행위를 해서 거짓 자백을 한 것이다."

살인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모(52·당시 22세) 씨에 대한 재심이 사실상 확정됐다. 검찰이 윤 씨에 대한 재심 개시 의견서를 수원지법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의 위법성과 강압성은 물론 검찰 단계에서도 오류가 있었던 사실이 확인된 만큼 조만간 법원에서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질 예정이다. 재심이란 확정된 판결에 중대한 오류가 있을 경우 판결의 옳고 그름을 다시 심리하는 절차다.

◆2심서 "가혹행위로 허위 자백" 폭로

이 사건은 발생 당시부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사건은 1988년 9월 1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오전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한 가정집에서 중학생 A(만 13세) 양이 숨진 채 발견됐는데,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을 기존 연쇄살인 사건의 모방범죄로 봤다. '화성연쇄살인 7차사건'이 발생한 지 11일 만이었다.

모방범죄로 판단한 이유는 야외에서 발생한 다른 사건 달리 A 양은 집 안에서 숨져 있었던 탓이다.

경찰은 이듬해 범행 현장 인근에 사는 농기계 수리공 윤 씨를 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해 수사를 벌였다. 이후 윤 씨는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20년을 복역하다 지난 2009년 가석방됐다.

윤 씨는 검찰 수사와 1심까지는 혐의를 인정했지만 2심부터 "경찰이 때리고 가혹행위를 시켜서 거짓으로 허위자백을 했다"며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 하지만 주장을 증명할 구체적 물증이나 사건 당시 알리바이가 마땅치 않았다. 결국 고등법원 항소와 대법원 상고마저 기각되면서 끝내 유죄가 확정됐다.

윤 씨는 이후에도 경찰의 강압수사 등을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2003년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사건 발생 30년 만인 올해 9월 DNA 분석으로 이 사건 용의자가 이춘재로 특정됐다. 이춘재는 경찰 조사에서 "이 사건도 나의 소행"이라고 말했다.

◆공소시효 지나 수사 관계자 처벌은 불가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전담 수사본부는 전면적인 재수사에 착수해 수사과정에 불법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당시 수사에 참여한 형사계장이던 A 씨 등 6명에게는 직권남용 체포·감금과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독직폭행, 가혹행위 혐의 등이 적용됐다. 수사과장이던 B 씨와 담당검사 C 씨는 직권남용 혐의로 입건됐다. 다만 이 사건 공소시효가 모두 끝나 당사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이나 강제수사는 불가능하다.

경찰 관계자는 "윤씨를 검찰에 송치한 뒤 형사가 '윤씨를 한두 대 때렸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며 강압 수사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국과수 감정인이 자료를 인위적으로 첨삭·가공·배제해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면서도 "이는 조작이 아니라 과학계에서 충분히 인정되는 조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사실상 윤 씨를 범인으로 확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감정서가 '조작'이라고 결론내렸다. 경찰이 해당 국과수 감정서에 '조작'이 아닌 '오류'가 있었다고 주장한 데 대한 반박이다.

수원지검 관계자는 23일 "윤 씨의 무죄를 인정할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고 당시 수사기관 종사자들의 가혹행위 등 직무상 범죄도 확인됐다"며 "감정서의 분석값을 국과수 감정인이 임의로 더하거나 빼는 방법으로 작성해 허위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조작"이라고 강조했다.

검찰과 경찰이 윤 씨를 사실상 범인으로 확정한 국과수 감정서를 놓고 신경전을 이어가는 형국이다.

이춘재 범행일지. / 뉴시스

◆조작 책임자 국과수 감정인 조사 못 해

검찰에 따르면 국과수의 감정인이 감정서를 조작해 윤 씨를 범인으로 확정한 것이 이 '억울한 옥살이'의 핵심적인 이유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윤 씨가 범인으로 확정된다고 해서 감정인이 얻을 이익은 없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다들 궁금해하는 그 이유는 우리도 알 수가 없다"며 "앞으로 법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가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감정서를 작성한 국과수 감정인은 현재 지병으로 조사가 불가능해 실체적 진실을 확정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게다가 공소시효도 모두 만료돼 법원이 관계자들을 강제로 구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경찰 출신 한 변호사는 "결국 모든 게 수사기관의 성과주의 때문이 아니겠냐"며 "인권이라는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에 조금 부족해보이는 윤 씨를 타깃으로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윤 씨의 재심 공판은 윤 씨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된 1심 재판을 맡았던 수원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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