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박근혜 靑‧외교부 '사법농단' 폭탄 돌리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사법농단 사건 18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외교부 전 간부 "지시받았다" VS 靑 전 수석 "압박 없었다"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이 거듭될 수록 박근혜 정부 당시 사법부‧외교부가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재상고심 판결에 개입한 증거가 쌓이고 있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와 외교부는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윤종섭 부장판사)는 7일 임 전 차장 18차 공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는 황준식 전 외교부 국제법규과 과장,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 박준용 전 외교부 아태국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박 전 국장의 소속인 아태국은 현재 아시아태평양국, 동북아시아국, 아세안국으로 확대 개편됐다.

첫 증인은 황 전 과장이었다. 검찰은 본격적인 신문에 앞서 그가 현직에 있을 때 쓴 것으로 보이는 문건과 업무수첩 등을 증거자료로 제시하며 직접 작성했는지 확인했다. 황 전 과장은 대부분 인정했으나 ‘2015 대법원 판결 정부의견 검토’라는 보고서는 확답을 망설였다. 결국 “기억은 나지 않지만 시기와 내용을 봐서 제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고 인정했다.

황 전 과장은 오후 이어진 공판에서 재상고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청와대와 대법원이 의견서 제출을 압박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는 “당시에는 윗선(청와대‧사법부)끼리 의견을 주고받은 정도로만 생각했다. 강제징용 재상고심은 박 전 대통령의 큰 관심사였으므로 사법부가 이를 고려한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며 “그러나 언론보도를 통해 ‘사법농단’ 문제가 불거지며 당시 지시받았던 의견서 제출이 그 일부분이라는 걸 알았다. 매우 착잡했다”고 밝혔다.

두 번째 증인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사법권에 개입해 대법원 심리를 지연시킬 의도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박 전 수석은 1978년 외교부에 임용된 이래 주일대사관 1등서기관, 외교부 아태국 국장 등을 역임한 ‘외교 전문가’로, 2009년 주 벨기에대사관 대사로 근무할 때 유럽을 방문한 박 전 대통령과 연을 맺었다. 그는 차기 외교부 장관 물망에 오르면서 외교부 후배들과 연락도 자제했다며 "외교부와 사법부에 압박을 가한 적 없다"고 진술했다.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증인으로 참석한 임 전 차장의 7일 재판에서 대법원 판결에 개입할 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사진은 2017년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박영수 특검 사무실에 출석하는 박 전 수석. /뉴시스

박 전 정무수석은 “대법원의 전범기업 패소 판결 시 큰 혼란이 일 것 같아 피해자 손해배상을 위한 재단을 따로 설립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언을 (박 전 대통령에게) 한 것 뿐”이라며 "우리 정부가 재판을 지연시키면 일본도 '한국 정부가 상당한 노력을 한다'고 평가해 재단 설립에 협력할 것이라 전했다"고 했다. 그의 제언에 박 전 대통령은 "뭐, 그게 낫겠네요"라고 대답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대법원 판결과 상관없이 한일관계 문제는 외교부 소관이므로 어떤 움직임이 있기를 바랐다”며 “이런 우려를 직속 후배이자 당시 아태국장인 박 전 국장에게 전화로 가끔 토로했다”고 했다. 윤종섭 부장판사는 박 전 국장에게 “외교부의 노력으로 대법원과 접촉해서 판결을 늦출 수 있냐”, “삼권분립 원칙을 침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냐”고 묻기도 했다. 이에 박 전 국장은 “그런 법적 지식과 관계없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외교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윤 부장판사가 재차 “늦출 수 있다고 봤냐”고 묻자 “알 수 없다”고 답을 피했다.

이에 따라 ‘사법농단’의 바통은 다시 외교부로 넘어갔다. 이날 마지막 증인인 박준용 전 국장이 증인석에 앉자마자 검찰은 그가 국장으로 있었던 2013년 11월 15일 아태국이 작성한 문건의 사실여부를 확인했다. 박 전 국장은 “제가 작성한 것인지 기억이 안난다”며 아태국 직원 김모씨와 이모씨 중 누구에게 지시했냐는 질문에도 “과장이 한 번 바뀌는 등 인사이동이 있어서 정확하게 기억이 안난다”고 답했다. 이에 검찰은 “과장이 김 씨에서 최 씨로 한 번 바뀌었을 뿐이다”라며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라 기억을 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냐”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검찰 측이 목소리를 높이자 법정 분위기는 한껏 얼어붙었다. 그러나 박 전 국장은 보고서 상단 제목에 사용된 특정 양식이 당시 직원 중 누가 만든 것이냐는 질문에도 “일단 제가 한 것은 아니다. 김 씨는 이런 문서를 만들 실력은 없었던 걸로 안다. 그렇다고 이 씨에게 지시했다는 기억 역시 없다”고 했다. 박 전 국장이 검찰조사에서 이 씨에게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을 언급하자 “당시에는 그렇게 추측했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잠깐 침묵하더니 굳은 얼굴로 “왜 아까는 기억을 못하겠다고만 하셨냐”고 묻자 재판부는 “그 정도 하셔야 할 것 같다”고 마무리 지었다.

임 전 차장 변호인 측은 증인신문에서 “문건 작성 시 피고인 임 전 차장을 포함해 법원행정처의 지시가 직접적으로 있었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반복했다. 이에 황 전 과장이 직접적으로 지시를 받은 적은 없다고 답하자 변호인 측은 “법원행정처는 의견서 제출이라는 절차 그 자체를 충족하길 바랐을 뿐이다”라며 “법원행정처가 대법원 재상고심에 개입하기 위해 뭔가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임 전 차장은 2012년 8월~2017년 3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차장으로 근무하며 일제 강제징용 재상고심 개입 등을 지시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구속기소됐다. 일주일 후인 13일 구속기간 만료를 앞두고 검찰은 “임 전 차장 측의 증거 동의 번복, 변호인 일괄 사임 등 때문에 재판이 지연됐다”며 구속연장을 요구할 계획이다. 구속기간 연장을 결정할 19차 공판은 8일 열린다.

ilraoh_@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