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과 사람들] '미운 情 고운 情' 모두 나눈 김성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와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앙숙처럼 싸우다가도 국민을 위해 손을 잡았다. 사진은 두 사람이 지난 5월 국회의장과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에 참석한 모습. 당시 드루킹 특검법, 추가경정예산안 등을 논의했다. /국회=문병희 기자

'진보의 큰 별이 떨어졌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1956년 8월 31일~2018년 7월 23일)이 향년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드루킹 의혹'에 스러졌지만, 노 의원은 노동운동가이자 '진보의 아이콘'으로 한국 진보정치 지형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그의 마지막 길을 동료 정치인들과 지인 등 많은 사람들이 세대와 진영을 넘어 '기억'하고 있다. <더팩트>는 노 의원과 인연이 있었던 일부 정치인들과의 과거를 되짚어 보았다. <편집자 주>

때론 앙숙처럼 싸웠고 때론 동료처럼 손잡았던

[더팩트ㅣ임현경 인턴기자] "정치적 대결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폭력은 배제돼야 한다. 김 원내대표가 부상에서 회복해 하루빨리 꽉 막힌 국회를 정상화하는데 나서주기를 바란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5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드루킹' 특검을 위한 단식 투쟁 중 폭행을 당하자 이같이 말했다. 평소 대립하던 김 의원이라 해도, 그를 향한 폭력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노 의원과 김 의원의 관계를 단편적으로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노 의원은 "폭력을 행사한 김 씨는 '맞는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과 행위야말로 정당화될 수 없는 반민주적인 행태에 불과하다. 생각이 다르다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바로 독재의 뿌리"라고 힘줘 말했다.

노 의원과 김 의원은 진보와 보수·한국당과 정의당, 각기 다른 이념과 당적을 가졌기에 대척점에 서서 부딪치는 일이 잦았다. 최근 공식적으로 맞붙었던 자리는 지난 1월 JTBC 신년특집 토론회였다. 당시 두 사람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특사 자격으로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한 일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김 의원은 "원전 수주와 함께 마치 뒷거래가 있었던 것처럼 문재인 정부가 뒷조사했다. 특사 방문 목적을 사전에 공개하는 게 보편적인데도 임 실장은 특사 사실을 밝히지 않았고, 청와대 해명도 다 달랐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노 의원은 "특사를 가면서 왜 공개적으로 못가냐니, 그럼 왜 MOU 체결하면서 비공개로 했냐"며 박근혜 정부 시절 국방부가 UAE와 비밀리에 체결한 것으로 알려진 상호군수지원협정(MLSA)을 언급했다.

노 의원은 "원내 제1야당 정도면 열심히 뛰어다녀야 한다. 공부를 안 해 시험성적 나쁜 것을 갖고 답을 다른 사람이 가르쳐줬다고 하면 되겠냐"며 "비공개 MOU 체결할 때 국방부, 외교부 내에서 반대한 사람들이 있다. 현직에 있지 않은 그 사람들이 얘기하고 다닌다. 공부 좀 하라"고 핀잔을 줬다.

김 의원은 이에 "문재인 정부를 꾸짖어야지. 요즘 대한민국에 희한한 야당이 있다"며 웃었고, 노 의원은 "한국당이 야당을 제대로 안 해봐서 뭐 하는 건지 모르는 것"이라 응수했다.

두 사람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동료로서 뜻을 함께 하기도 했다. 사진은 두 사람이 지난 3월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를 나누는 모습. /문병희 기자

노 의원과 김 의원은 공개 발언과 논평을 통해서도 서로를 겨냥했다. 노 의원은 지난 6월 20일 김 의원이 발표한 한국당 쇄신안에 대해 "시대 변화에 걸맞은 보수 회생 또는 새로운 보수를 구축하는 그런 마스터플랜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며 "자유한국당 내에서, 아니면 또 현재의 범보수 진영 내에서 가능할까 하는 의문까지 있다"고 평했다.

김 의원은 지난 4일 "노회찬 원내대표가 '드루킹' 특검에 결사반대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느냐"며 노 의원과 '드루킹'의 연관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최근 경찰 재조사 과정에서 2016년 7월 경공모(경제공진화모임) '파로스' 김모 씨 이름으로 4190만 원이 입금된 사실이 확인됐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드루킹' 김모 씨가 인터넷상에서 노 의원과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부르던 호칭을 언급하며 "'바둑이' 김경수에 이어 '누렁이' 노회찬까지 드루킹 게이트의 진실이 무엇인지 스스로 국민 앞에 나와 전모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23일 SNS에서 노 의원에 대해 3박 5일 간의 짧은 방미기간동안 18개의 공식일정을 바쁘게 소화해내면서 그 어떤 내색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사진은 김 의원이 23일 오후 故 노회찬 의원의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후 눈물을 흘리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토록 첨예하게 맞섰던 두 사람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동료로서 나란히 서기도 했다. 노 의원은 지난 5월 정의당 원내대표에 선출된 후 첫 일정으로 김 의원을 만났다. 그는 "새 원내대표로 선출되고 첫인사를 한국당으로 왔다. 이번 지방선거 끝나고 이긴 당은 따로 있는데 주목을 가장 많이 받는 당은 한국당이다. 그만큼 원내 제1야당으로서 한국당의 비중이 크고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관심도 많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빠르게 수습해서 후반기 원 구성을 하고, 그리고 한반도에 격동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대통령 1인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빠르게 원내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제1야당으로서 굉장히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그 역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을 예방함으로써 한국당의 존재감과 중요성을 인정하고 협치를 호소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 의원은 김 의원이 단식 투쟁 중 폭행을 당해 입원해 있을 당시 병문안을 하러 가기도 했다. 돌발사건으로 인해 국회 정상화를 위한 협상이 어려워지자, 우원식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함께 직접 김 의원을 찾았다. 노 의원은 "건강이 제일 우선이니 링거(수액)도 빨리 맞고 몸을 회복하라"며 "빨리 회복해서 합의를 이룰 수 있는 논의의 장으로 복귀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김 의원의 건강을 염려하며 뜻이 충분히 전달됐으니 단식을 중단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음주를 즐기던 노 의원의 마지막 술 동무도 김 의원이었다. 지난 23일 노 의원의 비보를 듣고 한참 말을 잇지 못하던 김 의원은 SNS를 통해 지난 밤 노 의원과 술잔을 기울이며 나눴던 이야기들을 털어놨다. 김 의원은 "나 때문에 순방단이 조기 귀국하는 게 못내 미안해 귀국 전날 대접한 술자리에서 용접공 면허를 취득한 얘기며, 노동운동에 젊음을 바쳤던 시절을 함께 회고하면서 즐거워하던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니 이렇게 비통할 수가……."라고 적었다.

노 의원은 지난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아파트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드루킹' 특검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던 상황이었다. 김 의원은 이날 차려진 빈소에 찾아가 노 의원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는 조문을 마친 뒤 흐르는 눈물을 옷깃으로 조용히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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