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박대웅 기자] '국민타자' 이승엽의 은퇴 경기를 앞두고 그의 현역 마지막 경기를 보고 싶어하는 '팬심'을 악용한 암표가 기승을 부리고있다. 30일 현재 암표는 정상가격의 4배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이승엽은 개천절인 다음달 3일 오후 5시 시작되는 넥센 히어로즈와 경기에서 현역 선수 마지막을 장식한다. 24일부터 판매된 이승엽 은퇴 경기 티켓 2만4000장은 판매 시작과 동시에 동났다. 멤버십 회원을 상대로 한 예매는 물론 26일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일반 예매도 시작 단 5분 만에 매진됐다.
30일 현재 각종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 이승엽의 은퇴 경기 티켓을 판매한다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한 암표상은 정상가 7000원인 스카이 자유석을 4배 이상 비싼 3만 원에 거래한다는 글을 올렸다. 또 다른 암표상은 구체적 가격을 제시하지 않은 채 경매식으로 티켓을 판매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삼성 라이온즈를 넘어 한국 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이승엽의 마지막 경기를 보고 싶어하는 '팬심'을 악용한 암표상들의 매표 행위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빗발치고 있다.
티켓 판매 주체인 삼성 라이온즈는 어떤 입장일까. 구단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구단 차원에서 암표상을 단속할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관할 수성경찰서에 암표상 단속 및 질서 유지를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이승엽 선수의 은퇴라는 상징성이 큰 경기인 만큼 경기 당일 질서유지와 팬들의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근무 중인 삼성 라이온즈의 골수 팬 35세 이선호(회사원) 씨는 "추석 연휴 기간인데다 이승엽의 마지막 은퇴 경기라는 상징성에 은퇴 경기를 꼭 보고 싶어 상사의 눈치를 살펴가며 예매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면서 "결국 예매에 실패했다. 단순히 돈 벌이로 티켓을 선점하는 암표상들을 보면 짜증나고 화가난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티켓이 돌아갔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암표상들의 횡포는 비단 이승엽 은퇴 경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암표상들은 좌석은 한정돼 있고, 팬심이 두터운 유명 팝스타의 내한공연 등에서도 활개를 치고 있다. 이베이의 자회사인 온라인 티켓마켓 스텁허브가 20~40대 국내 소비자 2000명을 대상으로 3월 진행해 6월20일 발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61%가 암표를 사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라인 상에 '플미'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플미'는 프리미엄 티켓의 준말로 웃돈을 얹어 원가보다 비싸게 파는 표를 말한다. 공연 당일 이뤄지는 오프라인 암표는 판매자도 그날 팔지 못하면 손해를 보므로 프리미엄은 200% 수준이다.
설문조사를 보면 암표 구매자들 상당수는 포털 중고나라와 같은 웹사이트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암표를 구매한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티켓 거래가 범죄의 표적이 된다는 점이다. 중고나라 등 플랫폼은 거래 공간만 제공할 뿐 티켓 판매 등에 있어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티켓 값을 받고도 티켓을 보내지 않거나 가짜 티켓을 보내는 사기가 판친다. 때문에 중계 플랫폼이 적극적으로 티켓 판매에 개입해 티켓 사기를 방지하는 한편 암표 방지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렇다면, 프로야구는 물론 EXO, 지드래곤, 콜드플레이, 에드 시런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의 공연 때마다 불청객처럼 등장하는 암표상들은 어떻게 빨리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었을까.
대표적인 방법은 매크로를 이용한 대량티켓 구매다. 매크로란 컴퓨터로 반복 작업을 대신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매크로를 이용하면 티켓 구매 때 해야 하는 개인정보 입력 등을 사람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대량 예매 혹은 좋은 좌석을 선점하기가 쉽다. 이런 방법으로 좌석을 확보한 암표상들은 티켓을 중고시장에서 비싼 값에 되판다.
매크로를 활용한 암표상들의 전횡이 극심하지만 이를 처벌할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매크로는 예매 정보를 일일이 입력하는 수고를 덜어줄 뿐 불법적인 해킹과 달라 처벌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매크로나 대리 티케팅은 공정 경쟁을 저해하고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가 확실하다. 관련법을 정비해서라도 근절해야 한다.
우리와 달리 미국은 매크로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미국연방법률인 온라인티켓판매법((Better Online Ticket Sales Act of 2016)은 온라인에서 불법적인 프로그램을 이용한 티켓 구매와 이에 대한 상업적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 뉴욕 주의 경우 '예술문화법'을 근거로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한 경우 500달러(약 572만 원) 이상 1500달러(약 1717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암표를 팔다 적발되더라도 경미한 처분을 받는다. 현행 경범죄 처벌법 제3조 암표 매매 행위는 '흥행장, 경기장, 역, 나루터, 정류장 등 정해진 요금을 받고 입장시키거나 승차 또는 승선시키는 곳에서 웃돈을 받고 입장권·승차권을 다른 사람에게 되판 사람'을 암표 매매 행위를 한 것으로 보고 범칙금 16만 원을 부과하고 있다. 범칙금보다 암표 수익이 훨씬 커 암표상 사이에서 '범칙금 내고 팔지 뭐'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매크로 등 편법을 활용한 암표상 근절을 위한 입법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윤영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4월 매크로를 활용한 암표 판매에 최대 10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공연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또 유동수(더불어민주당), 신용현(국민의당) 등 많은 의원들이 매크로를 규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현재 모두 계류 상태로 조속한 입법 추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