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종로=신진환 기자]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12일 오후 3시 30분께 서울 광화문대로에서 만난 서울 A고등학교 3년생 박종택(18) 군은 반쯤 쉰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아직 앳된 얼굴이지만 비장한 표정을 지은 그는 "우리는 이나라의 기둥"이라며 "무너진 나라를 위해 뭐라도 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박 군은 친구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위한 촛불과 물을 모금하고 있었다. "우리는 수능을 닷새 앞둔 고3 학생입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시민들은 발길을 멈추고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거리'로 나왔다.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이날 대규모 시민단체와 노조들 틈 속에서 미성년의 학생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청계광장 초입에서 여고생 8명이 '박근혜 하야하라'라고 쓰인 스티커를 옷에 붙이고 있었다. 그런 서로를 보면서 깔깔대면서 웃고 "등에 붙여줄까?"라며 장난치는 모습은 영락없는 '소녀'였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고 현 시국을 우려하는 한 명의 '국민'이었다.
인천 B여고 2년생인 이들은 박 대통령의 '잘못'을 가감 없이 지적했다. 김모(17) 양은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직후 안일한 자세를 보여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도록 했고, '최순실 게이트'로 허수아비임을 증명했다"며 "그렇다고 권력을 쥔 박 대통령이 책임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윤모(17) 양은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에 대해서 "사상 초유의 말도 안 되는 사태의 장본인인 박 대통령의 사과는 진정성이 없어 보였다. 전혀 와 닿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비상 시국'은 먼 거리도 문제가 될 게 없었다. 경기 동두천과 양주에서 왔다는 고교 1년생 권모(16) 양과 김모(16) 양은 "말이 안 되는 나라 상황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청와대가 보이는 광화문에 오게 됐다"며 "물론 집과 멀지만, 꼭 한 번은 집회에 참여하고 싶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중학교 동창"이라고 밝혔다.
특히 김 양은 '학생으로서 참담한 심정이 드느냐'는 질문에 한참 동안 말문을 잇지 못하며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내 진정한 뒤 "우리나라는 과거 수많은 국민이 여러 차례 민주화 운동을 벌여 일군 자유민주공화국"이라며 "국정 농단 사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권 양은 "박 대통령은 양심이 있다면 지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면서 "건전한 정치가 이뤄지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