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Re(플) : 유시진♥강모연, 판타지 로코가 아니라 다큐네
[더팩트 | 김경민 기자] KBS2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방영 9회 만에 꿈의 시청률로 여겨지던 30%대를 가뿐히 돌파했다. 총 16부작 가운데 반화점을 돌며 기록을 달성해버렸으니 그 인기를 능히 짐작할 만하다. 화려한 라인업만으로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요즘, 송중기와 송혜교의 프리미엄이 제대로 빛을 발한 것으로 보인다. '로맨스의 신'으로 불리는 김은숙 작가가 원작자인 김원석 작가의 손을 잡아 빈틈없는 시너지 효과를 낸 것도 크게 작용했다.
여기까진 '배우발'이나 '대사발'들로 일반적으로 꼽을 수 있는 흥행 요소들이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에는 두 가지를 치워놓고 봐도 무게중심을 잡고 있는 '신의 한 수'가 있다. 바로 남자 주인공이 군인이고, 여자 주인공이 의사여서 만들어내는 서사적 멜로드라마란 점이다. 군인과 의사의 본업에 충실하면서 서로에게 빠져드는 사랑을 절묘하게 엮어낸 것이 바로 세계적 한류드라마 부흥을 이끈 원동력이다. "로코가 아니라 다큐"란 리플이 달린 것도 여기에서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태양의 후예'는 2011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국경 없는 의사회'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 시놉시스에서 유시진(송중기 분)은 특수부대 알파팀장이 아닌 의사였다. 하지만 드라마화가 결정되고 김은숙 작가의 '로맨스 강화술'이 적용되면서 유시진의 직업은 특전사로 바뀐다. 군인이 된 유시진과 의사 강모연(송혜교 분)의 멜로가 탄생된 비화이다.
군인과 의사의 러브 라인은 뻔한 로맨스의 틀을 깨는 결정적인 '한 수'가 된다. 유시진과 강모연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는 그 흔한 신분 격차나 삼각관계, 부모의 반대도 아닌 직업관이다. 총을 든 군인과 칼을 든 의사, 누군가를 지킨다는 목적은 같지만 대립점에 있는 명백한 흑과 백이다. 유시진은 죽여야 하는 군인, 강모연은 살려야 하는 의사라는 게 숙명적인 갈등의 배경이다.
유시진과 강모연은 1회에서 서로에게 운명처럼 반하고 2회 만에 잠시 이별한다. 강모연은 유시진이 총을 쏘고 맞을 수도 있는 '특별한 군인'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난 의사이다. 생명은 존엄하고 그 이상을 넘어선 가치나 이념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미안하지만 내가 기대한 만남은 아닌 것 같다"고 결별을 통보했다.
유시진 역시 "군인은 명령으로 움직인다. 때로는 내가 선이라 믿는 신념이 누군가에게 다른 의미라고 해도 최선을 다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고 흔들리지 않았다. 강모연의 이별 선언에도 "이해한다. 즐거웠다"며 덤덤한 표정으로 받아들였다.
로맨스물의 역사에 이토록 담백한 이별 장면이 어디 있을까. 온갖 멋들어진 대사로 사랑해야 할 남녀 주인공이 시작부터 신념의 차이를 드러내며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는 장면은 '태양의 후예'만의 차별화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유시진과 강모연은 서로 마음을 확인한 후에도 군인과 의사라서 끊임없이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한다. 유시진은 규정상 기밀이라는 말만 남긴 채 작전에 투입돼야 하고, 강모연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유시진을 기다리며 홀로 남아 불안을 감당해야 한다.
두 사람은 이후로도 수차례 설레는 마음을 정리하려는 과정을 겪는다. 그 때마다 두 사람 모두 양보 없는 투철한 직업의식과 자부심을 보인다. 강모연은 생명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유시진은 강모연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과정이 쌓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다시 이어진 유시진과 강모연의 인연이 더욱 운명적으로 와 닿는다.
특히 유시진과 강모연은 사랑 때문에 군인과 의사로서 임무와 책임감을 버리지 않는다. 우르크 지진 재난 현장에서 극적으로 재회한 두 사람은 한없이 애틋하지만 그보다 먼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바삐 발길을 돌린다. 비현실적인 로맨스 속에서 무조건적인 희생을 보여주는 두 직업군의 특성은 감동을 준다.
흔히 한국 드라마를 두고 의학 드라마는 병원에서 사랑하고, 법정 드라마는 법원에서 사랑한다는 농담이 있다. '태양의 후예'에서도 유시진과 강모연은 병원에서 사랑에 빠져 지뢰밭이나 재난 현장에서 사랑한다. 하지만 결코 쉽게 사랑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유시진과 강모연이 군인과 의사이기에 묵직한 '휴먼멜로물'로 현실감을 높인다.
아무리 오글거리는 로맨스라는 지적을 받아도 그 안에 거창한 인류애를 조금이나마 담아냈으니 무척 성공적이다. 물론 송중기처럼 생긴 군인이나 송혜교처럼 생긴 의사가 없다는 비현실의 벽은 깨뜨릴 도리가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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