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지 말아야 할 악령이 되살아났다. 프로농구가 또 승부 조작 스캔들에 휘말리며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불과 2년 전에 한 굳은 다짐은 말뿐이었다. 프로 스포츠의 기본틀인 승패를 조작하며 근간이 무너졌다. 더군다나 그 장본인은 팀을 책임지는 수장이다. 이대로 가다간 농구계, 스포츠계 모두의 불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존폐 위기에 빠진 프로농구다.
25일 충격적인 소식이 들렸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이날 '현직 프로농구팀 A 감독이 불법 스포츠 도박에 연루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감독상을 다섯 차례나 받은 전창진 KGC 인삼공사 감독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전 감독은 부산 KT를 맡고 있던 지난 2~3월 불법 베팅 및 승부 조작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 감독은 지인에게 직접 베팅할 경기를 지정해주는 것은 물론 불법 스포츠 토토 베팅을 위해 사채업자로부터 3억 원을 빌린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이라면 우발이 아닌 조직적인 범행이다. 현 프로농구에서 능력을 입증해 명장으로 꼽히는 그였기에 이번 사건의 충격 여파가 매우 크다. 나와선 안 될 '범죄'다.
프로농구연맹(KBL)은 26일 부랴부랴 전 감독에 대해 '프로농구가 다시 한 번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돼 심려를 끼쳐 드려 농구팬들에 깊이 머리 숙여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경찰 수사를 신중하고 겸허한 자세로 지켜보겠다. 만일 혐의가 사실로 확인되면 엄중하고 강력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이 터진 뒤 사태를 수습하는 데 급급한 모양새다. 정정당당해야 할 프로 스포츠의 근간이 무너진 이번 사태는 절대 전 감독 개인의 일이 아니다. 프로농구를 관장하는 기관인 KBL로서도 분명히 뚜렷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
프로농구는 이미 지난 2013년에도 승부 조작으로 고개를 숙인 바 있다. 당시 강동희 전 원주 동부 감독은 지난 2011년 2~3월 브로커들로부터 4700만 원을 받고 승부를 조작한 혐의로 구속돼 징역 10월에 추징금 47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현직 사령탑에 오른 이가 검은돈을 위해 직접 승부 조작에 참여해 불법 베팅을 했다는 점에서 당시 팬의 분노는 컸다. 강 감독은 적발 당시 강하게 혐의를 부인하며 본인의 결백을 주장했으나 검찰의 강력한 수사 의지에 두 손을 들었다. 프로농구 구성원 모두가 분노와 동시에 책임을 통감하며 아파했다. 하지만 이때뿐이었다. 불과 2년 만에 승부 조작이 또 벌어졌다. 할 말을 잃게 한다.
전 감독은 예전부터 농구 팬들에게 '전토토(전창진+스포츠 토토)'라 불리며 주변에서 '경기에서 일부러 패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당시만 해도 우스갯소리로 통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팬들이 붙인 이 별명은 별명에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혐의가 완전히 밝혀지진 않았으나 거론 자체가 불명예스럽다. 별명을 현실로 만든 팬의 놀라운 선견지명을 바라보기 전에 쓰러져가는 프로농구 현실을 먼저 봐야 한다. 황금기를 겪은 농구대잔치 시절을 뒤로 하고 프로화 이후 추락을 거듭하는 농구계다.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그간 진지한 성찰이 있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지난 2011년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배구 등에서 조직적으로 승부 조작 사건이 터지며 프로 스포츠 근간이 흔들렸다. 이 세 종목은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이 상당수 승부 조작에 가담했다. 다른 종목과 달리 프로농구는 두 차례 모두 팀 수장이 승부 조작에 연루됐다. 충격 강도가 다르다. 프로농구를 이끌어가는 사령탑이자 '스승'이 잇속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간 농구계에 기여도를 따지기에 앞서 승부 조작에 자비란 없다. 악의 뿌리를 도려내기 위해선 이에 마땅한 일벌백계의 처벌이 필요하다. 이번 일을 확실히 매듭지어 승부 조작이란 말을 지워버려야 한다. 하지만 그 여파가 현재로선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 보인다.
[더팩트|김광연 기자 fun3503@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