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설 수 없는 막다른 길, 결백 주장 위해 극단의 충격요법 반박
변호사를 대동하고 마이크 앞에 선 그는 아예 작심하고 할 말을 했다. 조목조목 반박하고 변호했다. 그만큼 절박해 보였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막다른 길에 서 있다는 느낌이었다.
가수 태진아가 24일 서울 용산아트홀 대극장 미르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을 둘러싸고 전개된 온갖 의혹에 대해 해명했다. 금전을 요구한 '기레기'의 억측보도(태진아 주장)를 성토하고, 참았던 울분을 눈물로 토로했다. 이를 TV 생중계로 지켜본 팬들은 안타까운 탄식을 토하며 위로를 보냈다.
태진아는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속시원히 할 말은 다 했을까. 증폭돼온 의혹을 잠재우고 확실하게 여론을 되돌렸을까. 태진아는 자신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대중에게 알리는 데 성공했을지 몰라도 '억대 도박' 내용을 최초 보도한 시사저널USA 측과 '진실 공방'이 말끔히 정리된 게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여러 쟁점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진실 공방'을 떠나 그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사람들의 상당수는 7년 전 서울 홍제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가진 '나훈아의 기자회견'을 떠올렸다고 한다. 적어도 억울함에 분노하고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듯한 행태는 판박이로 보였다.
당시 나훈아가 '바지'를 내리는 퍼포먼스로 관객(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면, 태진아는 '눈물'로 하소연해 감성을 자극했다. 진위여부를 떠나 '오죽 억울하면 저렇게 까지 할까'라는 동정어린 시선을 받은 대목이다.
나훈아는 당시 신체훼손설, 두 여배우 관련 루머, 간통설, 암투병설 등 그에게 쏟아졌던 의혹이나 소문의 모든 것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비난의 화살은 ‘무책임하게 기사를 퍼나르고 의혹을 증폭시킨 기자'들에게 맞춰졌다. 이 기자회견 한방으로 그는 자신을 향해 난무하던 소문과 의혹을 일시에 잠재우는 효과를 봤다. 당시의 위급한 '사건의 실체'는 그의 오랜 잠적과 무대응으로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지만,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언급한 극단적인 표현들은 지금도 생생히 남아 있다.
"남의 마누라 뺏어서 가정파괴범, 실제는 물론이고 꿈에라도 남의 마누라를 탐하는 마음이 눈꼽 만큼이라도 있었더라도 여러분의 집에 키우는 개새끼입니다. 혹시 집에 개 없는 집은 옆집개, 건넛집 개라도 좋습니다."
기묘하게도 태진아의 기자회견 방식은 나훈아의 기자회견과 흡사하다. 태진아는 시사저널USA 발행인의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극단적인 방법을 썼다. 배수의 진 또는 일종의 충격요법이라고 할 수 있다
"가수 설운도의 부인도 도박전과가 6범이다. 송대관도 구속됐다가 이번에 풀렸거든? 그 마누라가 태진아 도박했던 여기 와서 200억 정도 말아먹었다. 그래서 마누라도 구속되고, 트로트가수 3명이 다 도박으로 망했다."
녹취록 내용의 이 부분은 공개 당시 자세히 들리지 않았지만, 법률대리인으로 자리를 함께 한 변호사가 굳이 또렷하게 재언급하면서 문제가 됐다. 가요계 안팎에서는 태진아가 기자회견을 앞두고 당사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기자회견에서 이름이 언급되더라도 양해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말이 들린다.
의혹 해소에도 불구, 얻은 것 못지 않게 잃은 것도 많다는 평가
시사저널USA 기사가 얼마나 근거없는 것인지를 확인하고 강조하기 위해 녹취록에 언급된 동료가수들의 이름을 굳이 공표했다는 얘기다. 명백한 명예훼손이다. 이 때문에 기자회견 직후 당장 해당 가수들이 강력 반발했다는 후문이다.
태진아는 또 자신의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 그리고 미국 낭인 생활과 대한민국 최고 가수로 성장하기까지의 눈물겨운 세월을 언급하며 여러차례 눈물을 보였다. 그의 한스런 고생담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찍어 공감했고, 덕분에 의도한 효과를 충분히 살렸다는 평도 들었다.
나훈아의 기자회견이 뒷날 '잘 기획되고 연출된 100분쇼'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은 바지를 내리려던 보디 퍼포먼스 때문이다. 진정으로 자신의 결백만을 밝히려고 했다면 남성기자 몇 명에게 조용히 확인해주고 이를 그들의 입을 통해 공개적으로 밝혀주면 될 일이었다.
태진아 역시 다소 불필요하다 싶을 만큼 과장된 모습을 보여줬다. 그의 분통함과 억울함이야 백번 이해한다 해도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좌충우돌한 것은 안타깝다. '진실 게임'의 상대방인 시사저널USA에는 그렇다치더라도, 국내 매체에 대해서도 극단의 표현을 써가며 성토했다. 심지어 변호사가 만류하는데도 그는 해야할 말과 자제해야 할 말을 컨트롤하지 못했다.
또 전화로 연결된 카지노 총지배인이 태진아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말미에 그를 극구 옹호하고 변호하는 듯한 언급은 신뢰 부분에서 되레 손해를 봤다. 드라이하게 사실만을 이야기하고 말았다면 믿음을 주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지나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이 있다. 필요 이상으로 되풀이해 강조하는 말에는 진실성이 결여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빗대 하는 말이다. 태진아는 기자회견에서 충분히 자신의 결백을 밝혔고,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상당부분 해소했다. 그럼에도 이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뭔지 모르지만 적어도 명쾌하지는 않다'는 느낌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아마도 얻은 것 못지않게 잃은 것도 많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아닐까.
[더팩트|강일홍 기자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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