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그것이 알고 싶다'
대학병원 의사, 사립학교 이사장, 기자, 기업인 등 대학 동창생 4명이 어느 날 골프를 함께 쳤습니다. 라운딩을 마친 뒤 기업인은 비용 200만 원을 혼자 냈습니다. '김영란법' 위반일까요, 아닐까요.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2012년 8월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제정안을 발표한 지 2년 7개월여 만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 문턱을 넘었으나 시행 과정에서 혼선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과 상황에 따라 '경우의 수'가 여럿이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100이면 100가지, 무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법이 공포되면 이르면 내년 9월부터 시행될 예정인데요. <더팩트>는 사례를 가정해 김영란법을 문답으로 풀어봤습니다.
Q: 위 사례처럼 골프를 함께 친 네 사람은 처벌 받을까요?
A: 골프를 함께 친 네 명은 김영란법 적용 대상입니다. 국회, 법원, 정부와 정부 출자 공공기관, 공공유관단체, 국공립학교 임직원 뿐 아니라 언론사와 사립학교 종사자들까지 모두 김영란법 적용 대상입니다. 또한 '음식물과 주류, 골프, 교통·숙박 등 편의 제공'을 모두 금품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관건은 금액과 직무관련 여부입니다. 위 사례의 경우 1회 1인당 50만 원이고, 일회성으로 단순한 친목 목적이면 아무도 처벌받지 않습니다. 김영란법은 '직무 관련 여부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 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100만 원 이하여도 직무 관련성이 있다면 공직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금품 가액의 5배 이하 벌금을 물 수 있습니다. 기업인이 기자에게 '내가 입찰 받는 데 유리한 보도를 해달라'고 부탁했다면 직무관련성이 생겨 해당 언론인이 과태료를 내야 합니다. 이 기업인이 동료(제3자) 부탁으로 이렇게 했다면 기업인 자신도 부정청탁 과태료를 물어야 합니다.
만약 같은 멤버, 같은 비용으로 1년에 골프를 7번(1명당 50만 원×7회) 쳤다면 각각 350만 원씩 받은 것이기 때문에 직무관련을 따지지 않고 형사처벌 대상입니다. 골프 비용 350만 원의 5배인 최대 1750만 원에 달하는 벌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Q: 공기업 간부의 처남이 직무와 관련해 101만 원 어치 상품권을 받았고, 며느리는 관련 단체 직원에게 100만 원이 넘는 가방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A: 김영란법은 가족의 적용 대상을 공직자와 그 배우자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처남과 며느리 둘 다 금액과 상관없이 김영란법으로는 처벌되지 않습니다. 다만 대가성이 있는 선물이라면 김영란법이 아니라 현행 형법 등으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Q: 사립학교 교원인데 아내가 저 몰래 촌지(50만 원)를 받은 것을 알았습니다.
A: 이 경우 100만 원 이하이므로, 형사 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공직자 자신이나 배우자가 금품을 받았을 경우 해당 공직자는 이를 즉시 돌려주고,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해야 합니다. 이를 어기면 직무관련성, 기부·후원 등 명목에 관계없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수수 금액의 5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야 합니다.
다만 기존 법률과 충돌이 있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김영란법에선 이른바 불고지죄(고지하지 않은 죄)인데, 범죄은닉죄의 경우 범죄자를 숨겨준 사람이 가족이나 친족인 경우, 그 특수성을 감안해 은닉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봅니다. 김영란법은 범죄은닉죄의 이런 정신과 정면 배치돼 위헌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Q: 중소기업 사장입니다. 매년 명절 선물을 공직자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A: 법 위반 여부는 향후 정해질 시행령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김영란법은 금품을 금전, 유가증권, 부동산은 물론 접대 향응 등 포괄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모두 금지할 경우 사회적 혼선이 가중될 염려가 있어 7가지 예외 사유를 적시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그 밖에 다른 법령 기준 또는 '사회 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 등'입니다. 현행 공무원행동강령에는 식사 접대는 3만 원까지, 경조사비는 5만 원까지 허용하고 있습니다.
만약 명절 선물이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가액을 초과하면서 형사처벌 잣대인 100만 원 이하일 경우, 직무 관련성을 따져 금품가액의 2배 이상 5배 이하 과태료를 부과받을 수 있습니다.
Q: 정치부 기자 두 명과 국회의원이 점심을 함께 먹었습니다. 15만 원의 밥값을 국회의원이 계산했다면 어떻게 되나요.
A: 세 명이서 먹었다면 기자 한 명당 5만 원 어치를 제공받은 셈입니다. 김영란법은 100만 원 이하라도 직무관련성이 있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교' 목적의 음식물은 허용하고 있지만, 그 금액은 추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현재 공무원 윤리강령에 따르면 식사비 허용 금액이 3만 원 이내로 정해져 있습니다.
Q: 대학 교수입니다. 친구가 "아들을 잘 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A: 대표적인 부정청탁 금지 위반입니다. 돈을 주지 않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영란법은 부정청탁 유형을 15가지로 정하고, 최대 과태료 3000만 원을 부과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채용, 승진, 전보 등 공직자의 인사에 관해 법령을 위반해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행위는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기 때문에 공직자에 대한 어떠한 인사 청탁도 금물입니다.
Q: 대기업 대관담당 직원입니다. 국회의원에게 조세 감면 개정에 힘써줄 것을 요청한다면 법 위반인가요?
A: 위반이 아닙니다. 김영란법은 부정청탁의 예외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공익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 기준의 제정 개정 등을 하는 행위입니다. 조세 등을 직접 감면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위반이나, 법 개정을 요청하는 것은 김영란법 예외 사유에 해당합니다.
[더팩트 ㅣ 오경희 기자 ari@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