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업자 "살길 막막" vs 대학생 "하숙비 비싸"
입시 경쟁보다 치열한 것. 바로 '입방' 경쟁이다. 매년 새 학기를 시작하기 한 달 전후로 대학가에선 방을 구하는 전쟁이 펼쳐진다. 개강이 다가올수록 경쟁은 치열하다. 방을 구하는 사람은 많은데 '물량'은 부족하다. 방값은 부르는 게 값이다.
살곳을 찾아 전전긍긍하는 청춘들에게 하숙업자들은 '갑 of 갑'이다. 최근 이화여자대학교에선 하숙업자와 학생들 사이 '갑을 논란'이 한창이다. 기숙사 건축에 하숙업자들이 '갑의 횡포'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기숙사 건축으로 생계를 위협받는다며 '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학생들의 생각은 다르다. "비싼 방값에도 시설 개선 없이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려는 것 아니냐"는 게 이들의 시선이다.
과연 하숙업자들은 '을'일까. 3일 <더팩트>는 이화여대를 중심으로 신촌 일대 하숙집을 직접 찾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기숙사 건축이 갑의 횡포? 학생들 "우린 계속 '을'이었다"
'동네 경제 말아먹는 갑의 횡포다' '학교 측은 기숙사 건축을 중단하라'
이날 오후 7시께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이화여대 인근. 학교가 동네 경제를 말아먹는 갑의 횡포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학교에서 기숙사를 신축하는 게 갑의 횡포라는 게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이화여대가 학교 기숙사 추가 건축의 이유는 간단했다. 2013년 기준 이화여대 재학생 대비 기숙사 학생 수용 비율은 8.4%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더 많은 학생이 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데 과연 이게 문제인 걸까.
신축 중인 이화여대 기숙사 앞에서 갓 2학년에 올라간 김은미(21) 씨를 마주했다.
기숙사에서 1인실을 쓰고 있다는 김 씨는 "기숙사와 하숙비가 큰 차이가 없는데, 여기(기숙사)에서 살다 하숙으로 옮기면 못 살 것 같다. 친구 따라 몇 번 가봤는데 방음도 전혀 안되고, 지저분하다. 도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훗날 기숙사에서 살지 못한다하더라도 하숙을 할 마음은 없다"고 말했다.
김 씨에게 '하숙업자들이 기숙사 건축에 반발하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김 씨는 "임대업자들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자신들의 이기심 때문에 학생들의 복지를 침해하는 행위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해 먹을 만큼 해 먹지 않았을까 싶다"며 "기숙사와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농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높이든지 아님 가격을 낮추는 방법을 내 놓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김 씨의 말에 대해 한 하숙업자(63)는 "이해는 하는데 기숙사로 학생들이 다 들어가면 우리도 먹고 살길 찾아주고 지어야 하지 않겠냐"고 넋두리를 했다.
◆ "계약 하지 않을 거면 말아!"
하숙집 수준이 어떻길래. 궁금했다. 이화여대 인근 하숙집 골목 입구. 가장 먼저 하숙업자들이 걸어놓은 듯한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근처에 연세대학교와 서강대학교도 있어서인지 하숙집 간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방을 직접 구해봤다. '방 있습니다. 02-3xx-xxxx' 하숙집 대문 앞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방 없어요"였다. 10곳 중 단 한 곳에서만 "남아있는 방이 있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ㄱ 하숙집 주인 이 모(50) 씨는 "오늘 하루도 방을 찾으러 온 사람이 수십 명에 달했지만, 계약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하루 빨리 계약하지 않으면, 이 일대에서 좋은 방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의 하숙집을 찾았다. 현관 앞 널부러진 신발들을 헤치고 '하숙집' 안에 발을 디뎠다. 부엌과 욕실 등 공동생활 공간을 지나 주인은 '45만 원짜리' 방문을 열었다.
장롱, 침대, 책상, 빨래 건조대가 놓여 있는 방에는 큰 창문이 달려있다. 커튼으로 대충 가려놓은 창문. 이 씨는 방이 남향이라 햇빛이 잘 들어온다고 자랑했지만, 큰 창문에 달려 있는 잠금장치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방을 둘러본 뒤 이 씨는 공동 생활 공간으로 안내했다. 정수기, 식기건조기, 전자레인지 등 있을 것은 다 있었지만, 꽤 오래된 제품들이었다. 무엇보다 화장실이 열악했다. 학생들은 세면대가 없어 세숫대야를 사용했고, 샤워기 바로 옆엔 세탁기 전선이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감전 위험'을 걱정하자 이 씨는 "물 조금 튄다고 감전돼 죽겠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손님의 굳은 표정을 알아챘는지 이 씨는 "계약 안 할 거면 말아라. 깔리고 깔린 사람들이 방을 구하러온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하숙업자들은 가는 손님 붙잡지 않고 오는 손님 막지 않았다.
◆ "하숙비가 저렴한 편이라고요?"
연세대 학생인 임 씨는 "대학 입학과 함께 이곳에서 3년 동안 살다 집안 사정으로 방을 빼게 됐다. 1년 하숙비만 해도 540만 원(45만 원×12개월)으로 3년 동안 1640만 원을 쏟아 부었는데, 주인이 빨리 나가라고 해서 서운하다"고 털어놨다.
오후 8시께 하숙집 골목에서 나와 이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때마침 하숙집으로 향하던 이화여대 학생 윤 모(23) 씨에게 말을 걸었다. 지난해까지 기숙사에서 살았다는 윤 씨는 "고학년으로 갈수록 기숙사 경쟁에서 밀렸고, 부랴부랴 47만 원짜리 하숙집을 구했다"고 말했다.
고시텔이나 원룸이 아닌 하숙집을 구한 이유를 묻자 윤 씨는 "밥 때문이다. 기숙사에서 30만 원만 냈는데, 하숙비로 47만 원에 용돈 그리고 등록금까지 더해지니 부모님께 좀…"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더팩트ㅣ서대문구=박준영 인턴기자 iamsoleil@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