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흔들리는 사회, 불신은 어디에서 오나?

2012년 충북 천안 대학가에 퍼진 할머니 봉고차 납치 괴담은 헛소문이 오해를 낳아 불신으로 이어진 대표 사례다./영화 트레이드 스틸

[더팩트|김아름 기자] "학생, 나 좀 도와줘!"

대학생 한모(21)씨는 늦은 밤 골목길을 지나다 고개를 돌렸다. 등이 굽은 할머니가 다급한 목소리로 자신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에게 다가가던 한씨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봉고차 한대가 자기 쪽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게 아닌가.

남성 운전자 인상도 꽤 험상궂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두 다리는 후들거렸다.

한씨는 냅다 뛰었다. '학생! 학생!'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충남 천안 대학가에 퍼진 '할머니 봉고차 납치 괴담'이 떠오른 탓이다.

'할머니를 돕는 찰나 괴한들이 봉고차로 사람을 납치한 뒤 장기를 판다'는 글이 2012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천안 일대에 무섭게 퍼졌다.

그러나 도와달라고 한 할머니는 근처 딸집을 찾던 평범한 노인이었다. 봉고차 역시 달걀을 배달하러 가는 길이었다.

괴담이 오해를 낳아 불신으로 이어진 사례다.

우리사회가 각종 괴담에 흔들리고 있다. 정부와 사법당국의 발표도 믿질 않는다. SNS에서는 근거 없는 이야기가 오간다. 온통 불신 투성이다.

자칫 친절을 베풀었다간 '이 사람이 왜 이래?' 하는 의심만 받는다.

<더팩트>는 최근 우리사회를 뒤흔든 여러 괴담 사례를 살펴 괴담에 솔깃한 사회 현상과 불신의 원인을 들여다봤다.

최근 트위터에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사망했다, 정변이 일어났다 등의 괴소문이 돌았다./트위터·TV조선 캡처

◆北 김정은이 죽었다? SNS 타고 온갖 억측 난무

트위터 사용자 김모(33)씨는 10일 화들짝 놀랐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죽었다', '감금당했다'는 글이 트위터를 타고 무섭게 번지고 있었다.

몇분 뒤 중국의 대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에도 '9월말 북한 친위부가 김정은을 체포해 정변을 일으켰다', '정변 주동자는 조명록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다'는 글이 올라왔다.

누군가 올린 이 괴담은 순식간에 퍼졌고 일부 언론은 이 내용을 앞다퉈 보도했다.

그렇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14일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 괴담은 말 그대로 헛소문으로 끝났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 관념에 통일과 북한 체제 붕괴 바람이 깔려 있다보니 이런 소문이 생긴 것"이라며 "사람은 주로 좋은 내용보다 나쁘고 자극적인 내용에 마음이 쏠리는 심리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죽음을 둘러싼 각종 괴담은 우리사회의 불신 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뉴스K 캡처

◆ '유병언은 살아있다!' 수사 당국도 못 믿어

괴담은 수사 당국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을 순천 송치재 별장 근처에서 발견했으나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시신은 유 전 회장이 아니다', '동남아에 살고 있다', '유병언 동생의 시신이다', '정부의 음모다' 등 별의별 억측이 쏟아졌다.

급기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부검 결과까지 발표했지만 들불처럼 번진 괴담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공 교수는 "경찰과 국과수의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보니 사람들이 제 멋대로 추측을 하는 것"이라며 "유병언 미스테리의 경우에는 거짓말도 계속 하면 진실이라고 믿는 심리 현상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대구 망치톱 괴한 괴담은 온갖 억측으로 이어져 또 다른 공포를 낳았다./페이스북 캡처

◆ '망치와 톱 든 괴한이 여대생을 죽이러 다닌다', 대구 일대 공포 확산

'망치와 톱을 든 괴한이 여대생을 죽일 것 같아요!'

지난 6일 오전 3시 20분께 대구 성서·달서경찰서 상황실에 긴급한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기도 전 트위터에는 이런 내용이 일파만파 퍼진 상태였다.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 두장은 충격에 가까웠다.

주황색 점퍼를 입은 한 남성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망치와 톱을 든 채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글과 사진이 퍼지면서 대구 일대는 한 순간 공포에 휩싸였다.

실제로 당시 SNS에는 “밤에 한 손엔 망치, 한 손엔 톱을 든 아저씨가 팔짱을 끼고 여고생과 여대생들 뒤를 따라다니고 있는데 팔짱 낀 이유가 망치를 들고 있어서라네요”라며 “달서구 쪽인 것 같아요. 조심해요”라는 글이 돌았다.

이러면서 경찰이 사실 확인에 나서는 등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하지만 괴담의 주인공은 대구시 달서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새벽에 고모를 만나려고 집을 나서다 겁이 나 망치와 톱을 들고 엘리베이터에 탄 것을 사람들이 오해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과거엔 입에서 입으로 괴담이 돌았으나 사회관계망서비스가 발달하면서 짧은 시간에 무차별하게 퍼지는 경향이 짙다"며 "사회가 어지럽고 정보 출처가 불투명하다보니 사람들의 불안 심리가 증폭해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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