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가연 기자] "이 느낌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영화 '명량'(감독 김한민)에서 이순신을 연기한 최민식(52)은 시사회 후 기자들에게 연기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25년 차 베테랑 배우 입에서 '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왔다. 그만큼 이순신은 최민식에게 깊은 책임감과 동시에 막막함을 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최민식의 결정은 옳은 듯하다. 그가 연기하지 않았으면 이순신을 어떻게 살려냈을까 하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영화 속에서 최민식은 제 역할을 다 하면서 영화 속에 빠져들었다. 그렇기에 '명량'은 최민식이란 배우의 손에서 다시 태어났다.
'명량'은 멀티캐스팅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완벽하게 이순신 역을 한 배우의 몫이 가장 크다. 그의 연기에 따라 영화의 평은 완전히 갈릴 것은 자명하기 때문. 결과적으로 최민식은 연기 내공을 완벽하게 보여줬고 그 때문에 '명량'은 한층 더 살았다. 새롭다고, 신선하다고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묵직하고 진중한 깊이가 재미를 더욱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최민식은 보여줬다. 최민식의 연기 내공은 통했을까. 30일 개봉한 '명량'은 개봉 첫 날에만 6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으면서 흥행 신호탄을 쐈다.
김한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명량'은 1597년을 임진왜란 6년을 배경으로 단 12척의 배로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공격에 맞선 명량대첩을 모티브로 했다. 역사에서는 약 8시간 만에 막을 내렸으며 조선의 배는 단 한 척도 피해를 보지 않은 해전으로 기록됐다. 김한민 감독은 역사 속에 기록된 이순신 장군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왔다.
이순신을 그린 최민식의 연기는 압도적이다. 고뇌하는 이순신부터 전쟁에 나선 이순신의 모습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면서 '역시 최민식'임을 드러냈다. 영화는 크게 전·후반부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왜군의 침략과 조선의 피하지 못할 상황 때문에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이순신의 모습이 그려지며, 후반부는 해전에 나선 이순신이 관객의 마음을 동요한다.
최민식은 극 초반부터 영화를 묵직하게 이끌며 관객을 이순신과 동화하게 한다. 최민식은 튀지도 묻히지도 않게 자신의 역할을 잘 소화하면서 영화를 이끄는 선장이 됐다. 모자라지도 더하지도 않은 그의 연기에선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게 나타나며 영화에 대한 책임감과 막중한 책임이 느껴진다. 4~50대 이상 남성 관객뿐만 아니라 2~30대 여성 관객도 그 묵직함에 매료될 지어다.
'명량'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 후반부 61분동안 진행되는 해전은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한다. 왜군과 조선군의 배가 전쟁하면서 벌이는 전쟁 장면은 사실성을 살려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회오리가 쉴틈 없이 이어지는 바다에서 이들의 전쟁은 파괴력 넘치면서 애잔하기도 하다. 이미 '최종병기: 활'로 사극 액션 장면에 남다른 연출력을 보인 김한민 감독은 빠르고 활력 넘치는 장기를 해전으로 가져왔고, 바다의 기와 더해져 세고 강렬한 장면을 연출했다.
하지만 '명량'은 최민식의 분량이 절대적으로 많아 다른 캐릭터들이 묻힌 게 다소 아쉽다. 왜군으로 분한 류승룡과 조진웅은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산하기 전에 사라진다. 굴곡 없이 단조로운 악역으로 그려져 이순신과 대응하지 못한다. 특히 조진웅은 갑자기 영화 속에서 사라져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어렵다.
진구와 이정현은 몇 장면 나오지 않으며, 영화 속에서 얼굴만 살짝 비치는 고경표는 마치 중요한 역할을 할듯하지만, 단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숨겨진 내용은 많은데 여러 캐릭터를 맛보기식으로 보여주다 보니 한쪽에 많은 무게가 실렸다.
'명량'은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무겁고 진득하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웃음기는 완전히 뺀 정통 사극의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명량'에겐 두 가지 모두 양날의 칼이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탄탄한 기반이 있지만, 그만큼 새로운 것을 발견하긴 어렵다. 이 지점에서 '명량'은 배우 최민식을 120% 활용해 깊숙한 내공으로 관객의 마음을 파고드는 방법을 택했다. 새롭지 않으면 어떠한가, 이순신인데….